"눈 내렸나" 새하얀 나무 알고보니…'새똥 테러' 비명 터진 이곳 [르포]

국내 대표 철새도래지인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안의 왕버드나무 군락이 민물가마우지 배설물에 의한 '백화현상'으로 새하얗게 말라 있다. 지난달 21일 오후 모습이다. 안대훈 기자

국내 대표 철새도래지인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안의 왕버드나무 군락이 민물가마우지 배설물에 의한 '백화현상'으로 새하얗게 말라 있다. 지난달 21일 오후 모습이다. 안대훈 기자

“눈 내렸나?”…탐방객 멈칫한 그곳  

지난달 2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주남저수지. 현재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루엔자(AI) 확산으로 탐방로가 폐쇄됐지만, 당시에는 평일 오후에도 국내 대표 철새도래지인 이 저수지를 찾아 둑길을 거니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들은 겨울의 진객(珍客) 재두루미, 큰고니 등 각종 철새를 눈으로 보거나 사진으로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 탐방객이 순간 멈칫하는 장소가 있었다. 저수지 안에 ‘ㄷ’ 형태로 조성된 약 1만㎡ 규모의 왕버드나무 군락 앞에서다. 탐방객들은 “눈이 내렸나?” “저기만 하얗다”고 수군거렸다. 이들 시선이 향한 곳에는, 왕버들 60그루가 눈을 맞은 듯 하얗게 메말라 있었다.

당시 창원 지역 적설량은 ‘0㎜’로 눈은 내리지 않았다. 창원시는 ‘백화 현상’으로 왕버들이 변한 것으로 파악했다. 왕버들 군락에 둥지를 튼 민물가마우지 떼가 쏟아낸 배설물에 버드나무가 뒤덮인 것이다. 소위 ‘새똥 테러’를 당한 셈이다. 하얗게 변한 왕버들은 푸른 저수지·누런 갈대와 대비돼 더욱 눈에 띄었다.

국내 대표 철새도래지인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안의 왕버드나무 군락이 민물가마우지 배설물에 의한 '백화현상'으로 새하얗게 말라 있다. 지난달 21일 오후 모습이다. 안대훈 기자

국내 대표 철새도래지인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안의 왕버드나무 군락이 민물가마우지 배설물에 의한 '백화현상'으로 새하얗게 말라 있다. 지난달 21일 오후 모습이다. 안대훈 기자

민물가마우지 ‘새똥 테러’…매년 겨울 반복

창원시는 주남저수지를 찾는 민물가마우지의 배설물로 인한 피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매년 겨울철마다 반복되는 현상이어서다. 겨울 철새 중 하나인 민물가마우지는 빠르면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주남저수지에서 겨울을 보낸다. 시 모니터링 결과, 이때 매월 적게는 500~600개체에서 많게는 2000~3000개체가 주남저수지에서 머문다.

문제는 민물가마우지 배설물에는 요산 성분 등이 대거 포함돼 있단 점이다. 이는 수목과 토양 등을 황폐화한다. 시 관계자는 “조류는 몸이 가벼워야 되어서 먹고 나면 소화를 바로 시켜 배출하는데, 이때 소화액도 같이 나오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민물가마우지. 연합뉴스

민물가마우지. 연합뉴스

실제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이 2021년 용역 조사한 ‘민물가마우지의 생태적 영향 파악 및 관리대책 수립 연구’를 보면 민물가마우지 관련 피해 중 하나로 수질·토양 악화가 꼽히기도 했다. 배설물이 쌓이면서 질소(N)·인(P)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또 집단 번식에 따른 식생 훼손도 우려됐다.

다만, 시는 현재까지 민물가마우지 배설물 피해 구역이 저수지 규모에 비해 적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은 것으로 본다. 왕버들 군락은 주남·산남·동판 저수지를 합한 주남저수지 총면적(898만m²)의 898분의 1 수준이다.

‘먹보’ 민물가마우지…어업 활동에도 악영향

그에 더해 민물가마우지의 엄청난 먹성은 어업 활동에 피해를 주고, 어류 종 다양성 감소 등 수생 생태계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에 따르면, 서식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민물가마우지의 하루 먹이 섭취량은 250~800g에 이른다.

국내 연구 중에는 번식기에 민물가마우지 한 쌍이 3개월간 먹는 어류의 양이 약 250㎏이란 평가도 있다. 하루 1.3㎏을 먹는 셈이다. 이는 민물가마우지 몸무게(2.6~3.7㎏)의 절반에 육박하는데, 사람으로 치면 체중 70㎏ 성인이 하루 동안 공깃밥(120g) 292그릇을 먹는 것과 같다.

2018년 겨울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월동 중인 민물가마우지 떼 모습. 사진 창원시

2018년 겨울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월동 중인 민물가마우지 떼 모습. 사진 창원시

실제 주남저수지 인근 어민들은 민물가마우지 관련 피해를 호소한다. 특히 날씨가 추워지면, 저수지 수위를 낮추기 때문에 물고기가 더욱 민물가마우지 표적이 되기 쉽다고 한다. “먹지 못할 정도로 큰 물고기를 민물가마우지가 부리로 쪼아서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어민들은 주장한다.

어업 피해 등으로 민물가마우지 포획에 나선 지자체는 경기, 강원, 충북, 전남 등 전국 곳곳에 있다. 경남 산청군에서는 지난해 총기 포획단을 꾸려 민물가마우지 84마리를 포획했다. 당시 산청군이 집계한 민물가마우지 어업 피해 규모(추정치)를 보면, 2018·2019년 각 12억원에서 2020년부터 24억원으로 일 년 새 2배가 됐다.

‘유해조수’ 지정됐지만…“철새 도래지인데 총 쏘기가”

환경부는 2023년 12월 민물가마우지를 ‘유해야생동물’ 지정했다. 덕분에 총포류를 활용한 포획이 가능해졌다. 이는 민물가마우지 개체 수가 급증해 그 피해가 확산하고 있어서다. 1999년 전국에 269마리에 불과했던 민물가마우지는 2022년 3만2196마리로 120배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2022년 4월 강원 춘천시 소양강 버드나무 군락지에 민물가마우지 무리가 둥지를 틀고 있다. 민물가마우지 무리가 나무에 배설물을 쏟아내 버드나무 군락지는 매해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4월 강원 춘천시 소양강 버드나무 군락지에 민물가마우지 무리가 둥지를 틀고 있다. 민물가마우지 무리가 나무에 배설물을 쏟아내 버드나무 군락지는 매해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시는 주남저수지에서 당장 총기를 활용한 민물가마우지 포획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철새 도래지이다 보니 총기를 사용할 경우 다른 철새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주변에 마을도 있어 인명 피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총포류를 사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향후 주남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 여러 방안을 고민해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