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에 미국과 따로 가는 글로벌 금리…셈법 복잡해진 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관세 폭탄 여파가 커지자 각국 통화 당국이 각자도생에 나섰다. 미국은 금리 인하를 사실상 멈췄지만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은 관세로 인한 경기 위축 우려에 줄줄이 금리 인하 버튼을 누르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움직임을 따라가던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비 미국’ 금리 인하 러시

10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예외 없이 25% 관세를 부과한다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상호관세 부과 계획도 명확히 했다. 상호관세는 상대국이 미국산을 수입할 때 적용하는 관세율과 동일한 관세를 매기는 걸 말한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공격과 맞물려 미국으로의 수출이 많은 나라를 중심으로 금리 인하가 이어지고 있다. 인도 중앙은행은 7일 기준금리를 0.25% 내린 6.25%로 결정한다고 밝혔다. 인도가 기준금리를 내린 건 2020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산자이 말호트라 인도 중앙은행 총재는 성장 지원 필요성을 이유로 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도 수출의 5분의 1이 미국으로 향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무역 마찰이 발생할 경우 경기가 둔화할 수 있다고 보고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6일 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멕시코는 0.5%포인트 내렸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 역시 지난달 29일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인하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해 9·10·12월 세 차례 회의에서 모두 금리를 내린 데 이어 지난달까지 정책금리를 하향 조정하면서 4회 연속으로 인하했다.

관세 폭탄의 여파가 경제성장률 둔화로 옮겨붙을 수 있다는 게 EU‧영국‧캐나다‧인도 중앙은행 등의 우려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영향과 관련해 “글로벌 무역 마찰이 심화하면 유로존 수출이 위축되고, 이는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지금 금리 인하를 중단해야 하는 시점을 논의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밝히며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놨다.


Fed는 신중론…강달러 부추겨

반대로 미국에선 관세 때문에 Fed의 금리 인하가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세 부과로 인해 미국 내 물가상승률이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달 금리를 동결하면서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10일 보고서에서 글로벌 투자은행(IB) 10곳 중 3곳(뱅크오브아메리카·도이치뱅크·노무라)이 올해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고 밝혔다. IB 2곳(모건스탠리·바클레이즈)은 한 번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F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비 미국’으로 나뉜 각자도생 통화정책은 달러 강세에 기름을 붓는 요인이다.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금리 수준이 높은 미국으로 돈이 쏠리고, 달러 수요가 늘어난 데 따라 달러값도 같이 오르기 때문이다. 관세 분쟁으로 인한 국제 정세 불안도 안전자산인 달러의 값어치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결정한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값은 전 거래일보다 1.4원 하락(환율은 상승)한 1452.6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중간에 낀 한국은행 ‘고차방정식’ 마주

한국은행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나라마다 통화정책 방향이 엇갈리는 데다 달러 강세가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6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2월 기준금리 인하가 불가피한 것은 아니고, 외환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원화 가치가 매우 빠르게 하락하는 추세라면 (금리를 내려) 불난 데 기름을 붓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고 관세 여파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마냥 미루기도 어렵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다 보니 경기가 둔화세에 있던 국가들이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다”며 “한국도 내수 침체 등이 이어지고 있어 금리 인하를 선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