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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5시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미도1차 아파트 인근 골목에서 한 학생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등에 가방을 멘 채 킥보드에 올라타있던 학생은 길을 걷던 초등학생들을 이리저리 피하더니 한 학원들이 모여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얼마 뒤엔 학교 체육복 차림으로 전기 자전거를 탄 또 다른 학생이 약 3m 폭의 골목에서 정차된 차 사이를 누비는 모습도 보였다.
이달부터 전국 최초로 ‘킥보드 없는 거리’ 제도를 시행한 서초구 반포동 학원가 일대가 여전히 전동 킥보드로 몸살을 앓고 있다. 11일 찾은 학원가에선 전기 자전거를 비롯해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 개인형 이동장치를 10여 m에 한 대씩 볼 수 있었다. 9세 아이와 손을 잡고 하원하던 주미희(40)씨는 “언제 킥보드나 자전거가 튀어나올지 몰라 불안해 매일 아이 손을 꼭 잡고 함께 간다”고 말했다.
반포 학원가는 오후 6시쯤부터 학원 버스와 학부모 차량이 뒤엉켜 전쟁터가 된다. 15인승 이상 학원 버스가 줄지어 학원 앞에 주차되면 단차 없는 인도와 차도는 구분되지 않는다. 복잡한 중에 킥보드 등이 갑자기 나타나면 사고 위험이 커져 여러 차례 민원이 제기된 곳이다.
6년째 이 학원가에 아이를 통원시키는 김모(43)씨는 “골목은 좁고 학원은 많은 동네인 데다, 픽업 시간대에엔 학부모 차량이 이중으로 주차된다”며 “그 사이로 전기 자전거랑 킥보드가 질주를 하면 아이들이 언제 치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포동 주민 박모(43)씨도 “주민들은 픽업 시간대에 절대 아이를 학원가 골목에 혼자 들여보내지 않는다”며 “이 주변 아이들이 그렇게 깁스를 많이 하고 다닌다”고 우려했다.
민원이 계속되자 지난해 11월 서울시는 학원이 몰려있는 서초구 서초중앙로 33길 2.3km 일대와, 마포구 홍익대 인근 관광특화 거리 ‘레드로드’를 킥보드 없는 거리로 선정했다. 이곳에선 개인형 이동장치(PM)의 주행·주차가 모두 금지된다. 전기 자전거는 최고 시속이 25km에 달하고, 페달에 발을 올리기만 해도 모터가 작동해 제어가 어렵다. 반포 학원가에선 지난 2023년 5월에도 전동킥보드를 몰던 고등학생 2명 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났다.
이번 달부터 계도기간이 시작됐지만 현장엔 안내판 조차 없었다. 학생들도 “학원 시간 맞추기 위해 빨리 가려고 킥보드를 타는데 금지된지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아직 예산이 내려오지 않아 홍보가 늦어졌다. 안내판은 4월 중으로 설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준호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교수는 “전기자전거, 전동킥보드는 동력 교통수단이므로 사고가 일어나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며 “아이들은 위험 인지에 둔감하고, 학원 차량이 많은 환경에선 시야 확보가 안 되면서 더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최소한 주의 표시라도 하거나, 가급적 인도와 분리돼 다닐 수 있도록 공간을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동킥보드, 전기자전거는 모두 속도가 문제”라며 “개인형 이동장치 운전자에게 스쿨존, 도로 폭 등 주변 환경을 고려해 운전하는 태도를 교육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