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낭비를 줄이고 과도한 규제를 없애는 임무를 맡은 미국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스페이스X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천재 개발자’들을 팀원으로 뽑았다. [사진 엑스 캡처]
2023년 봄 미국 네브래스카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생 루크 패리토는 팟캐스트를 듣다가 ‘베수비오 챌린지’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파괴된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고대 로마 파피루스에 적힌 문자를 해독하는 대회였다.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X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였다. 그날로 퇴근 후, 주말이면 화산재에 묻혀 검게 그을린 파피루스를 컴퓨터단층촬영(CT)한 표본을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해독하는 데 매달렸다.
현지 언론 네브래스카 이그재미너에 따르면 파티가 열린 친구 집 한구석에 앉아 작업하던 어느 날, 화면에 고대 그리스어 단어 몇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학자들 검증 결과 보라색이라는 뜻의 ‘포르피라(porphyras)’였다. 숯덩이로 변한 2000년 전 문헌에서 AI를 활용해 처음으로 글자를 읽어내는 데 성공한 것. 패리토는 상금 4만 달러(약 5800만원)를 받았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자 중 한 명인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티엘이 설립한 티엘재단 펠로십에 합격했다.
스페이스X, 뉴럴링크 등 회사에서 인연 전형적인 창업가의 길로 접어든 듯하던 패리토는 지금은 머스크가 수장으로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에 몸담고 있다. 연간 5조 달러(약 7300조원) 규모 연방 예산 지출을 관리하는 재무부 결제 시스템을 조사하고, 약 400억 달러(약 60조원) 예산의 국제개발처(USAID) 폐쇄 작업에도 관여하는 DOGE 핵심 인력이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 일명 ‘머스크 키즈’가 DOGE 팀원으로 정부 개혁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와이어드에 따르면 대부분 머스크가 창업·운영하는 스페이스X나 뉴럴링크·xAI·테슬라에서, 혹은 티엘이 창업한 팰런티어 등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페이팔 마피아’ 머스크와 티엘은 각각 트럼프 선거 캠페인에 거액을 기부하며 당선을 도왔다.
DOGE를 기반으로 머스크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약 40명으로 추산된다. 절반 가까이는 머스크와 함께 일한 근무연이 있고, 공공행정이나 재정 업무 경험은 대부분 없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이들은 “기술로 정부 운영을 효율화할 수 있다”고 믿는 머스크의 손발이다. 내부 전산망에 접근해 문제를 찾아내고, 웹사이트를 폐쇄하거나 대기 발령 통보 이메일을 발송하고, 조직 평가와 직원 면담까지 도맡았다.
예산 감축과 조직 개편을 위해선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나이 든 공무원이 젊은 DOGE 팀원에게 업무를 설명하고 자신의 유용성을 설득하는 개별 면담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점령군이 따로 없다는 비명이 나온다. 문화 충돌은 예견된 일이다. 머스크 키즈는 고연차 공무원을 “(멸종해야 할) 공룡”이라고 조롱하고, 공무원들은 머스크 키즈를 “머스크래츠(Muskrats)”로 부르기도 한다. 사향쥐를 뜻하는 영어 단어 철자가 절묘하게 “머스크 쥐새끼(Musk+rats)”와 같다.
DOGE의 위력은 속도에서 나온다. 가장 먼저 재무부와 USAID를 장악한 데 이어 국무부·교육부·에너지부·보건복지부 등 출범 3주 만에 대부분 부처를 통제하게 됐다. 인사처(OPM)와 총무처(GSA) 요직도 머스크 측근들이 차지했다.
속도는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머스크 방식에서 나온다. 청바지·후드티 차림에 백팩을 메고 출근해 청사에서 밤을 새우고, 배달 피자와 레드불로 배를 채우며 잠을 쫓는다. 몇몇 청사에는 침대도 들여놨다. 한 사람이 5~6개 부처에 동시에 소속돼 ‘멀티 태스킹’으로 일한다. 머스크는 “DOGE는 주 120시간 일하는데, 상대방 관료들은 낙관적으로 주 40시간 일한다. 그들이 이토록 빨리 패배하는 이유”라고 엑스에 적었다.
청사에서 쪽잠 자고 피자 시켜먹어 루크 패리토는 인공지능(AI) 기술로 폼페이 유적 파피루스에서 고대 그리스어 단어 ‘포르피라’를 처음 해독했다. [사진 베수비오 챌린지]
폭스뉴스에 따르면 팀원은 머스크가 직접 선발했다. 코딩 실력이 뛰어난 천재 개발자가 많다. 하버드대 4학년생인 AI 개발자 에단 샤오트랜(22)은 지난해 xAI가 개최한 해킹대회에서 준우승했다. 하버드대 에지컴퓨팅랩에서 자율주행차 기술을 연구했다. X와 xAI 출신인 마르코 엘레즈(25)는 재무부 결제 시스템을 코딩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얻었다. 그는 과거 소셜미디어에 올렸던 백인 우월주의 발언 등 인종차별적 행동이 드러나 해고됐다가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까지 나서서 ‘실수였다’고 두둔하면서 복귀했다. 메타·팰런티어 인턴 출신인 어캐시 보바(21)는 UC버클리 재학 당시 코딩 천재로 불렸다.
진보 진영은 “머스크의 쿠데타” “선출되지 않은 그림자 권력에 의한 국정 농단”이라고 비판한다. 검증되지 않은 괴짜들이 사회보장번호·납세 내역 등 민감한 개인정보에 접근하는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재무부 시스템 접근을 일시적으로 제한한 상태다.
보수 진영은 신속한 정부 개혁을 위해서는 기술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익단체인 터닝포인트USA의 찰리 커크 대표는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이 나라를 파멸로 이끌었다. 스타트업 정신을 가진 젊은 천재들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국방부, 교육부 등 거의 모든 것”을 검토하라며 DOGE에 더 큰 힘을 실어줬다.
■ 일론 머스크 연구-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박현영 경제선임기자 park.hyu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