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용 “‘홍장원 메모’ 4 버전 있다”…尹, 18분간 “홍 못믿는다”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1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조태용 국정원장이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진술 및 ‘홍장원 메모’에 대해 “사실과 달라 믿을 수 없는 내용이며, 홍 전 차장의 정치적 중립 문제가 누적돼 해임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13일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다.

윤 대통령도 이날 오전 재판 말미에 약 18분간 ‘홍장원의 말은 믿을 수 없고 사실이 아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국정원 직원 해임 이유는 외부에 밝힐 순 없지만 그 전부터 정치적 중립 문제가 많이 있었고 국정원장의 신임을 잃은 상태였다고 해서 해임 건의를 곧바로 재가했다”며 “홍 전 차장에게 전화해서 뭘 시켰다고 하는데 그건 격려전화였을 뿐, 내가 켕길 일이 있었다면 그렇게 바로 해임시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면서다. 

조 원장도 앞서 신문에서 홍 전 차장을 해임한 데 대해 “지난해 여름 국회에서 한 의원이 ‘홍장원이 인사청탁을 7번 했다’고 말했을 때부터 고려했고, 비상계엄 이후 홍 전 차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 등을 합쳐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라 생각해 조치했다”고 밝혔다.

조 원장은 다만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홍 전 차장의 증인신문 이후 “조태용 국정원장이 미국에 가 있는 줄 알고 홍 전 차장에게 전화해서 국정원의 평소 업무를 잘 챙기라고 전화한 것”이라며, 자신이 홍 전 차장에게 전화해 ‘방첩사를 잘 도우라’고 발언한 것이 주요 정치인‧법조인 체포를 도우라고 지시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 것과 배치되는 진술을 했다. 


조 원장은 “비상계엄이 있던 지난해 12월 3일 저녁 대통령에게서 전화가 와서 어디냐고 하시길래 ‘여기입니다’라고 답을 했고, 이후 ‘미국 안 가셨어요?’라고 물으시길래 ‘내일 떠납니다, 방금 미국 대사와 송별 만찬을 했습니다’라고 답했고 알겠다며 끊으셨다”고 진술했다. 조 원장은 “수사기관에서도 동일한 취지의 진술을 했고, 지난 4일 헌재 변론에서 (윤 대통령이) 말씀하시는 것도 봤지만, 당시 경황이 없어서 ‘여기입니다’를 듣고 뒷부분은 주의 깊게 듣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도 “조 원장이 그날 통화로 말한 것과 대통령실에서 얘기한 것을 뒤섞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조태용 “확인해보니 홍장원 메모 4개 버전… 알려진 건 4번째”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12?3 비상계엄 당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게 듣고 작성했다는 메모. 홍 전 차장은 위의 ‘체포 대상자’는 보좌관이 다시 썼고, 아래 흘려 쓴 글씨는 본인이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12?3 비상계엄 당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게 듣고 작성했다는 메모. 홍 전 차장은 위의 ‘체포 대상자’는 보좌관이 다시 썼고, 아래 흘려 쓴 글씨는 본인이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조 원장은 지난 4일 홍 전 차장의 헌법재판소 증인신문을 본 뒤, 자신의 증인신문을 앞두고 “소위 ‘홍장원 메모’로 알려진 메모의 작성 과정과 사실관계를 확인해왔다”며, “메모에는 총 4가지 버전이 있었고, 지금 알려진 메모는 4번째 메모”라고 설명했다. 조 원장에 따르면 홍 전 차장이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1시 6분에 썼다는 첫 메모는 포스트잇에 적혀 있었으며(메모①), 이 메모를 보좌관에게 주며 정서를 부탁해 보좌관이 다시 바르게 썼고(메모②), 다음날 오후에 ‘어제 메모를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써 달라’고 홍 전 차장이 요청해 보좌관이 다시 기억을 더듬어 사람 이름 및 직함 등을 섞어 썼으며(메모③), 여기에 보좌관이 쓰지 않은 글씨가 추가로 쓰인 버전이 홍 전 차장이 “내가 추가로 썼다”고 말하는 최종 버전(메모④)이라고 했다.

조 원장은 “보좌관에게 물어보니, (비상계엄 선포 당일인) 3일 밤엔 이름이 적힌 포스트잇을 줘서 그걸 가지런히 옮겨썼고, 4일 오후에 ‘너 기억력 좋지 다시 써서 줘봐’라고 하길래 사람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해 ‘딴지일보’ ‘헌법재판관(이후 대법관으로 고쳐 씀)’ 등 직함도 섞어 쓰고, ‘정청래’도 ‘정창래’로 잘못 쓰고 그랬다고 한다”며 “메모①은 홍 전 차장이 ‘찢어서 버렸다’고 했고, 메모②는 보좌관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메모③은 홍 전 차장에게 넘겨줘서 지금 널리 알려진 ‘홍장원 메모’(메모④)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조 원장은 “홍 전 차장이 첫 메모를 제 공관 앞에서 썼다고 하길래 CCTV를 확인해봤더니, 그 시간은 청사 내 홍 전 차장의 사무실에 있던 때라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李‧韓 잡으러 다닐 수도’ 뜬구름 잡는 소리라 생각했다”

조 원장은 홍 전 차장이 3일 밤 ‘윤 대통령에게서 전화로 방첩사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았고, 방첩사가 오늘 밤 이재명·한동훈 등을 잡으러 다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고 보고한 사실은 시인했지만, “묵살한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지 않아서 ‘아침 회의 때 얘기하자’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방첩사를 도우라’는 말은 안보실장일 때부터 여러 차례 들은 말이라 늘 듣던 대로 말씀하셨구나 했지, 제 입장에선 그 말을 ‘이재명‧한동훈’ 이름과 연결시킬 수 없었다”며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느꼈다, 제가 알아듣게 보고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증인신문 말미에는 재판관들이 12월 3일의 국무회의와 지난해 3월 있었던 ‘안가 회동’에 대해 조금 더 캐물었다. 조 원장은 “지난해 3월 회동에서 저는 ‘비상’ ‘계엄’등은 기억하지 못하고, 그 이후로는 그런 모임을 가진 적이 없다”며 “12월 3일 국무회의에선 모인 국무위원들이 다 걱정하는 취지로 말했고, 저는 대통령과 독대하진 않았지만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대통령을 뵈러 갈 때 따라 들어가서 (계엄을) 하시지 말도록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