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생 따라 시위 현장서 북 치더니…가출소년 '정돌이' 놀라운 근황

1987년 고려대에 정착해 대학생 형, 누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난 정돌이(송귀철). 사진 인디라인

1987년 고려대에 정착해 대학생 형, 누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난 정돌이(송귀철). 사진 인디라인

허구헌 날 술에 취해 주먹질을 하는 아버지를 피해 고향인 경기도 연천을 떠난 14살 소년.  
무작정 가출했지만 머물 곳이 없어 청량리 역전을 배회하던 그는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중이던 고려대 학생(행정학과 84학번 서정만)을 만나게 된다. 심야 만화방에서 소년과 하룻밤을 보낸 대학생은 갈 곳 없는 그를 고대 캠퍼스에 데리고 온다. 1987년 봄의 일이다. 

이후 소년은 고대 정경대 학생회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고대 학생회관과 민주광장은 그의 놀이터였다. '정돌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정경대에서 사는 꼬마, 정경대의 마스코트란 뜻이다. 
소년은 대학생 형, 누나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가정 폭력의 상처를 치유해갔다. 형, 누나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정돌이, 밥 먹었니?’ 였다. 어떤 날은 여섯 끼를 먹기도 했다. 그리고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생각조차 못했던 '꿈'도 갖게 됐다.

1987년 고려대에 정착해 대학생 형, 누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난 정돌이(송귀철). 사진 인디라인

1987년 고려대에 정착해 대학생 형, 누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난 정돌이(송귀철). 사진 인디라인

고려대학교 정경대의 마스코트 '정돌이'(송귀철)의 사연을 소개한 신문 기사.  사진 인디라인

고려대학교 정경대의 마스코트 '정돌이'(송귀철)의 사연을 소개한 신문 기사. 사진 인디라인

고대 서클(농악대)에서 우연히 배운 풍물의 매력에 빠진 정돌이는 꿈을 향해 열심히 정진해 장구 명인이 됐다. 30년 넘게 사물놀이 계승에 힘쓰고 있는 풍물패 '미르' 대표 송귀철(51)씨 얘기다.  
그날 고대생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비정한 도시의 뒷골목에서 스러져갔다 해도 이상할 것 없는 가출 소년을 훌륭한 예술인으로 키워낸 건, 요즘 세상에선 찾기 힘든 박애(博愛) 정신이었다. 그해 봄은 따뜻했고, 고려대학교는 정돌이에게 새로운 고향이 됐다.   

다큐멘터리 '정돌이'(12일 개봉)는 이처럼 드라마틱한 송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정돌이를 키운 건 고대생 뿐만이 아니었다. 엄마손 식당, 고모집 등 학교 주변 식당들도 그를 따뜻하게 품었다. 사범대 학생들이 ‘교육상 좋지 않으니 정돌이를 우리에게 맡겨라’고 요구했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었다.  

정돌이의 캠퍼스 내 성장 스토리는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1987년 봄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4·13 호헌' 조치로 대학가가 들썩이기 시작하던 때였다. 시대의 격랑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건 정돌이도 마찬가지였다. 정돌이는 이후 수년 간 고대생 형, 누나들의 민주화 시위 현장에 따라다녔다. 북을 들고 시위대 앞에 서기도 했다.  


'정돌이' 송귀철 씨(가운데)가 김대현 감독(왼쪽), 배우 박중훈(오른쪽)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인디라인

'정돌이' 송귀철 씨(가운데)가 김대현 감독(왼쪽), 배우 박중훈(오른쪽)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인디라인

영화는 정돌이의 눈으로, 당시 학생운동의 큰 축이었던 고대 학생운동의 역사를 조망한다. 연대기 서술이 아닌, 가출 소년의 시선에서 격동의 80년대를 재연한, 의미있는 시도다. 정돌이는 87년 6월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6월 민주 항쟁에 참여했고, 12월 대선 당시 개표 부정과 관련한 구로구청 점거 사태 현장에도 있었다.

백골단(사복경찰 체포조)에 붙잡히자, "형 찾으러 왔다"는 거짓말로 빠져나오기도 했다. 성북서 형사들 사이에선 '정돌이만 잡으면 고대 운동권 조직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어느 날 말없이 사라진 형, 누나들이 감옥에 있다는 얘기를 뒤늦게 들었을 때 정돌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정돌이는 엄혹한 시대를 체험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다. 그리고 장구를 꾸준히 연마해 풍물패 리더가 됐고, 지난해 말 최초로 개인 공연을 열기도 했다. 2016년 마지막 날, 정돌이 송씨는 수십만 인파가 모인 새해 맞이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전인권 등과 함께 합동 공연을 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마음. 자신을 품어주고, 꿈을 갖게 해준 고대생 형, 누나들이 물려준 정신적 자산이었다. 

영화엔 정돌이 말고도 많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80년대 시위 현장에서 청춘을 불태운 학생 운동가들이다. 그들은 정돌이와의 추억을 매개로, 학생운동 경험과 속사정을 풀어놓는다. 당시 학생 운동권의 민주화 투쟁을 영광스러운 후일담처럼 미화하지 않는 건, 이 영화의 큰 미덕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학생 운동가들을 추모하고, 지금도 노동 현장과 농촌, 거리 공연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80년대 민주화운동 경력을 밑천 삼아 기득권에 합류한 유명 인사들은 단 한 명도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든 김대현 감독은 정돌이를 품었던 고대생 중 한 명이다. 80년대를 다루는 다큐를 만든다면 반드시 정돌이 이야기로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 전부터 해왔다고 한다. 

그는 "기록돼야 할 이야기들을 반드시 남겨 놓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다큐를 만들게 됐다"면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은 역사를 제대로 정리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80년대라는 과거의 도움을 받고 있기에 우리의 오늘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