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 '의천도룡기'로 美 때렸다…中왕이 '20자 구절' 화제

14일(현지시간) 왕이 중국공산당 정치국위원 겸 중국 외교부장이 61회 뮌헨안보회의에서 세계 변혁 중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EPA

14일(현지시간) 왕이 중국공산당 정치국위원 겸 중국 외교부장이 61회 뮌헨안보회의에서 세계 변혁 중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EPA

지난 1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 중국 세션에 참석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인용한 무협소설의 한 구절이 중국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날 왕 부장은 미·중 관계 전망을 묻는 사회자 질문에 “상대방이 강하게 나오면 강하게 나오도록 내버려 두어라. 맑은 바람은 저절로 산마루에 스쳐 지나가리니. 상대가 횡포를 부리거든 횡포를 부리도록 내버려 두어라. 밝은 달 저 혼자 강물에 비치리니(他强由他强/淸風拂山岡/他橫由他橫/明月照大江)”라는 뜻의 한자 20자를 읊조렸다. 이어 “번역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딥시크를 찾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왕 부장의 발언은 15일 중국중앙방송(CC-TV)이 인터넷에 딥시크 번역과 함께 소개하면서 SNS 화제로 떠올랐다. 곧 중국 외교부도 홈페이지를 통해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 건, 태연자약하게 높은 산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왕 부장의 발언을 강조했다.

중국 무협 소설의 대가 진융(金庸·김용). 사진 바이두 캡처

중국 무협 소설의 대가 진융(金庸·김용). 사진 바이두 캡처

왕 부장이 인용한 구절은 홍콩의 소설가 겸 저널리스트였던 진융(金庸, 1924~2018)의 작품 『의천도룡기』의 무림비급 ‘구양진경’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소설에서 주인공 장무기는 아미파 멸절사태의 막강한 공격에 쓰러진 뒤 이 구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되뇌인다. “멸절사태가 강하면 강할수록, 횡포를 부리면 부릴수록 그것은 그저 그것일 뿐, 맑은 바람이 산마루를 스쳐 지나가듯 밝은 달빛이 강물 위에 어리듯 미동도 하지 않고 최대한 정적을 지킨다면 비록 상대방의 공격이 내게 가해진다 하더라도 털끝만 한 상처도 받지 않게 된다. 이 요체가 바로 ‘이정제동(以靜制動)’, 즉 고요함으로써 상대방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이다.”(임홍빈 번역, 김영사)

이어 장무기는 “상대방이 모질게 나오거든 모질게 굴도록 내버려 두어라. 내게 한 모금의 진기(眞氣, 참된 기운)만 있으면 족할지니라”는 구양진경의 다음 구절을 떠올린다. 마치 왕 부장이 딥시크를 구양진경의 ‘참된 기운’에 비유한 것처럼 비쳐지는 대목이다.


중국 오픈형 AI 딥시크.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오픈형 AI 딥시크.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성도일보는 16일 “왕 부장이 무협소설 작가 진융의 명구절로 중미관계를 대답했다”며 “또 농담처럼 뜻을 모른다면 중국의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인 딥시크 번역을 찾아보라고 말했다”라고 계산된 발언이었음을 내비쳤다.

루비오 장관과 첫 대면회담 주목

왕 부장의 화려한 ‘선문답 외교전’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첫 대면회담에서도 펼쳐질지 주목된다. 왕 부장은 오는 18일 유엔 안보리 순회 의장국 중국을 대표해 ‘다자주의 이행과 글로벌 거버넌스의 개혁’을 주제로 안보리 고위급 회의를 주최할 예정이다. 왕 부장의 뉴욕 방문을 기회로 루비오 장관과 첫 대면회담이 이뤄질 것이라는 외신 전망이 나온다.

앞서 왕 부장은 지난달 24일 이뤄진 루비오 장관과 첫 전화통화에서도 고전을 인용해 공격했다. 통화에서 왕 부장이 중국 고전 『회남자(淮南子)』를 인용해 “스스로 알아서 잘하라(好自爲之·호자위지)”라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발표했다. 하지만 루비오 장관은 지난달 30일 메긴 켈리 쇼에 출연해 “그들은 영어로 하나를 말하고 중국어로는 다른 용어를 사용해 다르게 번역해 경고 한 것처럼 만드는 게임을 좋아한다”며 경고성 발언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왕 부장은 과거 뮌헨안보회의에서 고전을 인용해 한국을 비판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한국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배치를 논의하자 왕 부장은 뮌헨에서 로이터와 인터뷰를 갖고 “항장이 칼춤을 추는 진짜 이유는 유방을 죽이려는 것(項莊舞劒 意在沛公·항장무검 의재패공)”이라며 사드를 중국을 겨냥한 칼춤에 비유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