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과 주연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15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미키 17' 갈라 상영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SF ‘미키 17’이 15일(현지 시간) 열린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1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는 이날 “‘미키 17’은 개막(13일) 이래 영화제에서 가장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며 “방해(신임 집행위원장 트리시아 터틀이 박수가 나오는 도중 봉 감독을 무대로 불러낸 것)가 없었다면 기립박수가 더 오래 지속됐을 것”이라고 현지 보도했다.
2000여석 기립박수, 봉준호 "휴먼 프린팅 개념에 매료"
‘설국열차’(2013) ‘옥자’(2017)를 잇는 봉 감독의 이 세 번째 할리우드 영화는 매해 대중적 화제작을 트는 비경쟁 부문 갈라 스페셜에 초청됐다. 아카데미 4관왕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복귀한 봉 감독과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토니 콜렛 등 출연진이 참석한 이 날 저녁 갈라 상영은 상영관인 독일 베를린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2000여석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상영 후엔 타이틀롤 패틴슨의 코믹한 1인 2역 복제인간 연기에 호평이 쏟아졌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더 배트맨' 등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패틴슨은 독일 현지 팬들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사진은 15일(현지 시간) 베를린영화제 '미키 17' 갈라 상영 정 패틴슨이 팬들과 기념 촬영에 응하는 모습이다. AP=연합뉴스
상영 후 무대에 오른 봉 감독은 “휴먼 프린팅(인간 출력)이라는 개념에 매료됐다. 그 자체로 비인간적이고 슬픔, 코미디가 함께 있는데, 그 속에서 어떤 드라마를 발전시켜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각색하게 됐다”면서 곁에 선 패틴슨을 향해 “이 사람을 계속 출력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출력되기 좋은 느낌이랄까” 농담을 섞어 말했다.
플랜B "장난기·반항적 봉준호, 원작에 반응할 거라 직감"
그가 각본까지 쓴 ‘미키 17’은 2054년, 외계 얼음행성 개척 임무 중 죽으면 복제본으로 재출력돼온 소모품 청년 미키(로버트 패틴슨)의 모험담. 실수로 17번째 미키가 살아있는 채, 18번째 미키가 출력되며 벌어지는 사투를 해학적으로 그렸다. 원작인 미국 소설 『미키 7』를 근미래로 옮기고 봉 감독의 단골 주제인 정치‧계급적 풍자를 더했다.
봉준호 감독이 15일(현지 시간) 베를린영화제 '미키 17' 갈라 상영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이다. 그는 이날 전세계 취재진 질문에 대부분 한국말로 답변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영화 제작사인 플랜B 공동설립자 디디 가드너는 “봉 감독의 영화엔 의미 있고 진지하지만 장난기 있고 권위주의적이지 않으면서 반항적인 독특한 톤이 있다”면서 “그가 원작 주제에 반응할 거라 직감했다”고 이날 버라이어티에 밝혔다.
미키 17·18 삼각관계 "쓰리썸 아냐, 분화한 미키의 사랑"
봉준호 영화로는 드물게 연애담도 그렸다. 귀환한 미키 17은 유능한 요원인 여자친구 니샤(나오미 애키)를 두고 미키 18과 삼각관계를 벌인다. 이날 갈라 상영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러브스토리나 멜로 드라마는 늘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였다”면서 극 중 애정신에 대해 “쓰리썸은 아니다. 미키와 니샤의 사랑인데 미키가 (17과 18로) 분화한 거다. 어찌 됐건 미키의 사랑”이라며 “미키가 꾸역꾸역 살아남는 것도 결국 사랑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미키 17' 봉준호 감독(왼쪽부터)과 배우 스티븐 연, 토니 콜렛,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애키, 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가 15일 독일 베를린영화제 현지 포토콜 행사에서 포즈를 취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독재자이자 잉꼬부부인 마셜 부부(마크 러팔로‧토니 콜렛)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를 연상시킨다는 해석에 그는 “역사 속 나쁜 정치인들의 모습을 재밌게 섞어보고자 했다. 솔직히 참고한 한국과 미국 정치인도 있었다”면서 “과거에서 영감 받았는데 영화 본 분들은 요즘 실제 어떤 정치인을 상상하기도 하는 것 같다. 결국 역사가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주선이나 광선검보단 구멍 난 양말 신은 인물들의 SF를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영화 경계 넘은 봉준호 새 도전"VS "주제 모호" 엇갈려
다만,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16일까지 26개 외신‧평단이 매긴 ‘미키 17’ 신선도는 85%(100% 만점). 호평이 많지만 역대 봉 감독 장편 8편 중 가장 낮은 점수다. 그전까지 최저점은 87%를 받은 ‘옥자’, 최고점은 99%를 기록한 ‘기생충’, ‘마더’(2009, 96%), ‘살인의 추억’(2003, 95%) 순서였다.
15일(현지 시간) '미키 17'의 베를린영화제 갈라 상영에는 봉준호 감독과 '옥자' '설국열차'를 함께한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도 참석했다. EPA=연합뉴스
현지 외신은 ‘미키 17’에 대해 “엄청나게 재밌다. 지금껏 나온 블록버스터와 다른 거대하고 이상한 광경”(타임아웃) “예리한 비극과 공포를 새긴 스펙터클”(옵저버) 등 우호적 반응을 주로 보였지만, “오스카 수상 감독 봉준호의 혼란스러운 SF”(BBC닷컴) 등 봉준호 영화치곤 아쉽다는 평가도 있었다. 미국 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봉준호의 스토리텔링은 유쾌하다”면서도 “마셜 캐릭터에 엿보이는 트럼프식 비웃음, (추종자인) 식민지 주민들의 빨간 야구모자” 등 노골적 세태 풍자가 오히려 “풍자적 추진력을 약화시킨다”고 말했다.
이날 현지 상영을 본 이상용 영화평론가는 “‘미키 17’에는 ‘옥자’ ‘설국열차’ ‘괴물’(2006)로 친숙한 봉준호 영화의 특성과 정체성 분열, 잦은 플래시백과 상상 장면 등 낯선 면이 공존한다”면서 “한국영화라는 경계를 넘어 ‘봉준호 영화’의 새로운 도전을 보게 될 것”이라고 본지에 전했다.
‘미키 17’에 배우들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공포영화 ‘유전’(2018)으로 이름난 콜렛은 대본도 읽지 않고 영화 출연을 결정한 건 ‘미키 17’이 처음이라고, 패틴슨은 “봉준호는 나에게 러시모어 산(미국 대통령들의 얼굴이 조각된 국립공원) 같은 감독”이라고 존경을 표했다.
‘미키 17’은 북미에선 3월 7일, 한국에선 오는 28일 전 세계 최초 개봉한다. 그에 맞춰 스티븐 연과 마크 러팔로, 나오미 애키 등이 오는 20일 봉 감독과 함께 내한해 기자간담회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