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회담을 앞두고 손을 잡고 미소 짓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무역적자국 7위인 일본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을 약속하며 적극 협상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도 일본은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큰 폭으로 늘리며 대미 무역 흑자 규모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미국산 에너지 등 수입 확대를 통해 대미 흑자 관리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17일 미 상부무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685억 달러(약 98조80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대일 적자(716억 달러·약 103조2000억원)보다 줄어든 수치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가 511억 달러에서 660억 달러로 증가한 것과 대조적인 흐름이다.
일본 재무성에서 발표하는 대미 흑자 규모 역시 2023년 8조7200억 엔(약 82조9000억원)에서 2024년 8조6500억 엔(약 82조2000억원)으로 줄었다. 이런 흐름은 일본의 대미 수입액(9.5%)이 대미 수출액(5%)보다 더 크게 늘어난 결과다. 미·일 양국에서 발표하는 무역 수지에 차이가 있는 것은 국가별 수출입 집계 시점과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김주원 기자
일본의 주력 수출 품목은 자동차다. 한국무역협회와 일본관세협회 무역 통계를 통해 일본 수출입 현황을 분석해보니, 지난해 일본의 대미 수출액 중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7.7%였다. 자동차 부품까지 포함하면 33.4%로 올라간다. 수출액 증가율은 자동차가 3.5%, 자동차 부품이 14.9%였다. 일본 역시 한국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자동차 관세 부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부과를 예고한 멕시코·캐나다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관세 부과가 한달간 유예된 상황이지만 현실화되면 그에 따른 충격이 적지 않다. 아사히 신문은 “미국 자동차 판매량의 30% 이상이 (도요타·혼다 등) 일본 업체”라고 보도했다.
다만 일본의 대미 수입액은 더욱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일본은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LNG 등 천연가스 수입을 7.2% 늘렸다. 일본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LNG 수입국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동남아 등으로 수입처를 다변화해왔다. 전략적으로 미국산 LNG 수입 비중을 더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가스터빈(23.9%), 바이오의약품(11.1%), 옥수수(39.8%), 컴퓨터기기(208.7%), 항공기(103%), 항공기 부품(24.2%) 등 다양한 품목에서 대미 수입이 늘었다. 주력 품목 수출을 유지하면서도 대미 수입 확대를 통해 무역 균형을 맞춘 것이다.

김주원 기자
이는 트럼프 행정부에 일본을 ‘유용한 파트너’로서 각인시키기에 유리한 환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 신문(닛케이)은 “미국의 대일 적자가 다른 주요국의 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든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미국 내에서 자동차 등 과거 미·일 무역 마찰에 대한 인상을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라고 밝혔다.
일본은 LNG 수입을 확대해 대미 흑자를 관리하는 전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대미 직접 투자액을 1조 달러로 끌어올리는 한편, 미국산 LNG 수입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현재 일본 정부는 다양한 소통 채널을 통해 미국에 관세 면제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대미 수출이 10.4% 늘어난 반면, 대미 수입은 1.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당장 수출 실적엔 긍정적이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다. 결국 본격적인 관세 부과 시점까지 한국도 LNG 수입 확대 등 매력적인 협상 카드를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상식 무협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일반 기업에서 미국에 수출하는 걸 막을 순 없는 노릇이니, 일본처럼 수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미 흑자를 관리해야 한다”며 “LNG뿐만 아니라 항공기, 반도체 장비 등 품목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미국산을 더 들여오도록 독려하는 방식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