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의료현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대표의 거부 반응은 "내년 0명 선발" 등을 만지작거리는 의협보다 한술 더 떴다. 특히 의정갈등 맞은편에 선 정부보다 정부 옆에 서서 제자들의 복귀를 호소한 '스승·어른' 의대 교수에 감정의 날을 잔뜩 세웠다.
의대 학장들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함께 '3058명 복귀'를 발표한 데엔 "학장이라는 자가 정부 권력에 편승해 제자들을 시궁창에 빠뜨리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생들을 상대로 사기와 협박뿐"이라고도 했다.
의대생이 복귀할 수 있도록 전공의가 도와달라는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 인터뷰를 인용한 글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후배들 건들지 말라며 앞장서도 모자란 판에, 처단하겠다는 자를 믿고 굴종하라 한다"면서 "정작 학생들 겁박하는 건 당신들(학장) 아닙니까"라고 직격했다. "학생들은 철부지가 아니"라며 사실상 의대생 휴학을 부추겼다.

10일 서울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박 비대위원장이 '차선책'이라도 끌어내려던 의대 교수를 싸잡아 공격하는 순간, 의정갈등은 휘발되고 내부갈등만 남았다. 그의 글이 공개된 뒤 의료계 단체 카카오톡방 등에선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교수들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 "의협 부회장 표현으로서 적절치 못하다" 등의 반발이 쏟아졌다. 의료계의 통일된 의견을 모으는 게 중요한 시기, 오히려 소금을 뿌리는 결과에 가까워졌다.
휴학 당사자인 의대생의 목소리도 이런 잡음에 묻혔다. 그런데도 화살은 안으로만 향한다. 11일 박 위원장은 페이스북 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중앙일보에 "(교수들이) 잘못을 저지른 윤석열 대통령에겐 찍소리도 못하면서, 학생들에겐 제적시키겠다며 협박한다"면서 "의료계 부조리를 조장하고 방조해온 건 교수들인데, (지금껏) 뭘 했나"라고 밝혔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둘째)이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학생 복귀 및 의대교육 정상화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의료계 내에선 박 위원장의 강경 행보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보는 이가 많다. 전면에 나선 그의 한마디가 전공의·의대생, 더 나아가 의협의 전체 여론처럼 '과대대표' 된 지 오래라서다. 합리적 의견이 사라지는 부작용만 남았다. 한 복학 의대생은 "의료 시스템이 박단 한 사람에게 좌우되는 모양새가 말이 되냐"고 한숨 쉬었다.
내년 정원 조정의 '골든타임'은 이제 3주 안팎. 이대로면 박 위원장의 '비토'대로 흘러갈 거란 우려가 나온다. 한 필수의료과 의대 교수는 "의협이 의료계 대표 단체로서 내부를 설득하면서 정부와 협상해야 하는데, 김택우 회장은 보이지 않고 박 위원장 말에 흔들리는 게 문제다. 빈손으로 끝나면 결국 김 회장과 박 위원장, 두 사람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