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근담. 바이두
채근담의 '채근'은 '만약 우리가 매일 채소의 뿌리를 씹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이다(人就咬得菜根,則百事可成)'라는 송(宋)나라 왕혁어(汪革語)의 문장 가운데 두 글자를 취한 것이다.
이번 사자성어는 호행사병(虎行似病. 범 호, 다닐 행, 닮을 사, 병 병)이다. 앞 두 글자 '호행'은 '호랑이가 걷다'란 뜻이다. '사병'은 '병에 걸린 듯'이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호랑이는 먹잇감을 속이기 위해 마치 무슨 병이 걸린 것처럼 힘없이 걷는다'라는 의미가 성립한다. '응립여수(鷹立如睡)'가 비슷한 표현이다. '매는 마치 조는 듯 서 있고, 호랑이는 무슨 병이라도 걸린 듯 걷는다.' 채근담 전집 200장 첫 구절이다.
사상가 겸 저술가 홍응명의 자(字)는 자성(子誠)이다. 그는 명(明)나라 말기 태어나 평생 은자로 살며, '채근담'과 '선불기종(仙佛奇踪)'을 저술했다. 아쉽게도 그의 생몰연도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선불기종. 바이두
그는 '채근담'을 완성하고 서문(序文)을 한 지인에게 부탁했다. 서문을 쓴 우공겸(于孔兼. 1548~1612)의 기록에 기대어, 우리가 홍응명의 활동 연대와 그가 교제하던 지인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홍응명에 대한 일화들은 전해지고 있다. 그가 지금의 난징(南京) 인근의 한 고을에 머물며 '채근담'을 저술하던 무렵의 일이다. 그 지역은 토양이 좋지 않아 채소가 쓴맛이 강했다. 게다가 당시 채소의 뿌리는 제거하고 판매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있어서 농민들은 더 어려움을 겪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지식인 신분의 홍응명은 시장 바닥에 그냥 버려지는 '채근'을 최소한의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하곤 했다. 구입한 채소 뿌리는 직접 요리하여 무슨 특별한 요리라도 되는 것처럼 즐겼다.

채근담. 바이두
사실, 홍응명은 이 '채근' 요리를 통해 깨우친 이치와 평생 섭렵한 고전에서 꾸준히 익힌 이치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가 '채근담'이라고 책의 이름을 결정한 이유다.
우공겸은 '채근담'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을 '채근'이라고 명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청렴한 생활을 바탕으로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면서, 또 한편으로 세상 진리를 깨치고 인격을 수양했을 것이다.' '채근담'의 저술 취지도 저자를 대신해 밝혔다. '내가 부족하지만 서문을 기록해, 세상 사람들에게 '채소 뿌리' 속에도 인생의 참맛이 담길 수 있음을 알리고 싶다.'
'호행사병'. 힘이 세고 위험한 맹수라서 관련 이미지가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중요한 결정을 앞둔 순간 급히 호출하여 읊조리며 되새겨볼 가치가 충분한 네 글자다. 최강자인 호랑이도 한 번의 사냥을 위해 거들먹거림을 뒤로하고 이처럼 최선을 다한다. '채근담'의 뼈대 가운데 하나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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