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우먼파워...경매로 집 산 30대 여성 80% 급증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별관 경매법정 안내 표지판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별관 경매법정 안내 표지판 모습. 연합뉴스

#2년 전 결혼해 지난해 첫 아이를 출산한 권모씨(33)씨는 지난달 서울 노원구에 있는 아파트 84㎡형을 경매로 낙찰받았다. 낙찰가는 감정가(5억6000만원)보다 5000만원가량 낮았다. 김씨는 자금 마련을 위해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았고 양가 부모의 도움도 받았다. 그는 “육아 휴직을 내고 틈틈이 경매 공부를 했다”며 “평소 바라던 지역이나 신축은 아니지만 내 집을 시세보다 싸게 마련했다는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여성 이모씨(39)는 현재 거주하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는 집을 2023년 경매로 샀다. 2018년에 지금 동네에 전세로 이사 온 그는 당초 집을 사려고 했지만, 가격이 너무 오르자 경매로 눈을 돌렸다. 이모씨는 “꾸준히 경매 물건과 집값 흐름을 지켜보다 바라던 단지에 원하는 평수가 경매로 나와 결심을 했고 2등과 3000만원 차이로 낙찰을 받았다”고 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부동산 시장에서 ‘30대 우먼 파워’가 거세다. 지난해 경매로 집을 산 30대 여성은 전년 대비 8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여성의 생애 첫 주택 구입도 크게 늘었다. 18일 중앙일보가 법원 등기정보광장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지난해 임의·강제 경매로 나온 집합건물(아파트·빌라 등)을 낙찰받아 소유권 이전 등기를 신청한 매수인은 2만6894명으로 전년 대비 59.2% 증가했다.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로 대출금을 갚지 못한 사람이 늘면서 경매로 나온 물건이 급증한 여파다. 

한 시중은행 외벽에 게시된 디딤돌대출 안내 게시물 모습. 뉴스1

한 시중은행 외벽에 게시된 디딤돌대출 안내 게시물 모습. 뉴스1

30대, 특히 여성이 경매시장에서 도드라졌다. 지난해 경매로 집을 산 30대는 6133명으로 전년 대비 68.1% 증가했다. 특히 30대 여성(2673명)은 같은 기간 80.1% 늘었다. 남녀 불문 전 연령대에서 증가 폭이 가장 컸다. 30대 남성(3460명) 증가율은 59.8%였다.  


부동산 경매시장에서 30대 여성의 약진은 무엇보다 정책금융 대출 영향이 크다. 연 1~3% 저금리로 최대 5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는 신생아 특례대출, 2~3% 이자로 2억5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는 생애 최초 디딤돌 대출 등 수혜가 30대에 집중돼서다. 경매전문업체인 공유지분거래소 김종창 이사는 “강화된 대출 규제로 경매시장이 투자자에서 실수요자 중심으로 전환됐다”며 “고위험 투자보다는 실수요를 중시하는 30대 여성이 경매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된 것도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생애 첫 주택 구매자 중에서도 30대 여성이 눈에 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처음으로 집을 사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친 30대 여성은 8만1604명으로 전년 대비 21.2% 증가했다. 30대 남성(11만613명) 증가율(21.4%)과 비슷했다. 40대 여성(4만9417명)과 남성(5만3878명)은 각각 14.5%, 18.5% 늘었다. 같은 기간 20대 여성(2만363명)은 2.1% 증가했고, 20대 남성(2만884명)은 2.4% 줄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기존 부동산 주도 세력이 5060 남성이었다면 최근엔 재테크 차원에서 내 집을 마련하고 투자 이익도 얻으려는 30대가 늘고 있다”며 “경제력 있는 30대 미혼 여성, 1인 가구 증가 등도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최근 30대 부부는 전세도 공동 명의로 많이 한다”며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고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경제 독립,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강화된 현상”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