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셈법에 막힌 반도체법…李 “여당 몽니” vs 與 “거짓말 성장론“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제422회국회(임시회) 제1차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김원이 소위원장이 반도체 특별법, 에너지 3법 등 논의를 위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열린 제422회국회(임시회) 제1차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김원이 소위원장이 반도체 특별법, 에너지 3법 등 논의를 위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반도체 연구·개발(R&D) 분야의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두고 여야가 한발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반도체특별법(반도체법) 전체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여야는 절충안을 찾는 대신 책임을 떠넘기는 ‘네 탓 공방’에 돌입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8일 페이스북에 “반도체법 소위 통과가 국민의힘 반대로 불발됐다”며 “‘주52시간 예외 조항’ 없이 어떤 것도 합의할 수 없다는 무책임한 몽니로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산업 경쟁력’이 발목 잡히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같은 시각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대표가) 요즘 들어 성장을 외치는데, 정작 성장하는 것은 이 대표 거짓말 리스트뿐”이라고 비판했다. 권 원내대표는 또 이 대표의 “‘몰아서 일하게 해주자는 게 왜 안 되냐’ 하니 할 말 없더라”는 지난 3일 발언을 거론하며 “불과 2주 만에 입장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반도체법은 전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산자위) 법안소위에서 논의됐지만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반도체 클러스터 입주 기업에 대한 재정·행정적인 지원엔 여야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 예외’ 논란이 법안 전체의 발목을 잡았다. 민주당 간사인 김원이 의원은 “근로시간 특례는 근로기준법이나 장관 고시에 담아야 한다”며 반대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해당 규정을 뺀 반도체법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맞섰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여야는 더 나아가 오는 20일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서 ‘빅딜’이 이뤄질 가능성마저 막았다. 이날 이 대표가 “더는 조건 붙이지 말고 합의 가능한 반도체법부터 우선 처리하자”고 못 박고, 권 원내대표가 “반도체법에서 주 52시간제 예외조항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맞받으면서 각자 퇴로를 끊었기 때문이다.


산자위 구조상 민주당의 ‘단독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법안 좌초가 유력해진 이유다. 민주당 산자위원은 “소위만 놓고 보면 야당이 다수니까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뺀 반도체법 표결 처리할 수 있지만, 전체회의 문턱을 넘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먼저 ‘주 52시간제 예외’를 뺀 반도체법 처리에 동의할 가능성도 없다. IT개발자 출신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개발자에게 시간제한을 거는 것은 독(毒)”이라고 말할 정도로 여권에선 ‘주52시간제 예외’를 반도체법의 핵심 규정으로 꼽는다.

업계에선 2월 임시국회를 넘기면 반도체법이 상반기에는 처리되지 않을 거라고 전망한다. 3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가 마무리되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로 접어들 수 있다. 산자위 관계자는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쟁점 법안은 절대로 타협될 수 없다”고 말했다. 

여야의 극한 대치는 결국 조기 대선을 겨냥한 득실 싸움이란 시각이 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산업 현장에서도 급하지 않다는 ‘주 52시간제 예외’를 여당이 고집하는 건 민주당·노동계 결속을 깨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반대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가 처음엔 친(親)기업 행세를 하려다가 노동계 반발에 놀라서 스텝이 꼬였는데, 왜 우리가 도와줘야 하느냐”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가 ‘내 쪽이 손해 볼 게 없어도 저쪽 좋은 건 못 해주겠다’는 식으로 어깃장 정치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