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옮기고 완제품 대신 원료 수출…美 관세폭풍에 분주해진 K바이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약품 관세 부과 계획을 언급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무관세로 미국에 의약품을 수출하던 한국 기업도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5% 이상의 관세율이 적용될 것이라는 예고 외에 세부 기준과 대상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체들은 미국 생산을 늘리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약가 인하냐 관세 부과냐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으로 2023년 각국에서 1760억 달러 이상의 의약품을 사들였다.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한국은 면세로 의약품을 수출하고 있다. 한국 의약품의 대미 수출액은 약 15억 달러(약 2조원)다. 전체 의약품 수출의 약 16%를 차지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1기부터 약가 인하 정책을 추진해왔다. 복제약은 오리지널 제품보다 가격이 30% 이상 저렴하기 때문에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바이오시밀러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들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중국과의 무역 갈등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재집권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장벽을 높이며 상황이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의약품 관세율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25% 또는 그 이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의약품은 상호관세 부과 대상서 제외될 수 있다”고 밝힌 것과는 배치되는 행보다. 제약·바이오업계가 ‘희망 고문’에 시달리게 된 이유다.

원료 수출 높이고 현지 공장 확보

인천 송도에 있는 셀트리온 본사. 사진 셀트리온

인천 송도에 있는 셀트리온 본사. 사진 셀트리온

 
해외 매출 비중이 60% 이상인 셀트리온은 관세 부과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선제 대응에 나섰다. 회사는 19일 자사 홈페이지에 주주 대상 공지문을 올리고 “올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선조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시 상대적으로 세율이 낮은 원료의약품(DS)을 수출하고 현지 위탁생산(CMO) 업체를 통해 완제의약품(DP)을 생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셀트리온 측은 “(미국 내) CMO 업체들과 제품 생산 협력 방안을 협의하고 있으며 필요 시 현지 완제의약품 생산을 지금보다 더 확대하는 방식으로 상황 변화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공장 설립도 추진 중이다. 회사 측은 “지난해부터 미국 현지 원료의약품 생산시설 확보를 위해 구체적 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올해 상반기 중 투자 결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천 송도 내 생산기지를 확대하며 집적효과를 노려온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미국 현지 공장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아직 관세 정책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美 제약업계도 동분서주

다급해진 건 미국 제약업체들이다. 미국에서 제조되는 의약품의 원료 중 약 30%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화이자, 머크 등 현지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이번 주 트럼프 대통령과 비공개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미국병원협회(AHA) 등도 의약품에 대한 관세 면제를 요구하고 있다. 항암제, 항생제 등의 가격 상승, 생산 위축에 따른 의약품 공급 부족 사태를 우려해서다. 김승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광범위한 의약품 관세 정책은 즉각적인 가격 상승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 트럼프 정부가 주장해온 의약품 가격 인하와 상충하기 때문에 (의약품 전면 관세 도입은) 실현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