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기업 못만날 이유 있나" 한경협 "차인 옛 여친 만난 느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한국경영자협회(한경협)와 마주 앉아 경제 현안을 논의했다. 

이 대표는 이날 류진 회장 등 한경협 관계자와 국회에서 민생경제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대표는 “전쟁 중에 적군도 만나는 게 세상의 이치인데, (서로) 못 만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라면서 “정치권이 불필요하게 기업 활동에 장애 요인을 만드는 것을 최소화해야 하고, 우리 기업들이 대한민국 국부 창출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개별 기업 단위가 감당하기 어려운 대규모 투자는 국부펀드든 국민펀드든 (조성해서) 국가의 지원을 넘어 투자도 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라고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둘째)와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5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민생경제간담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둘째)와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5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민생경제간담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민주당과 한경협이 한 테이블에 앉은 건 2015년 9월 이후 10년 만이다. 문재인 대표 시절 허창수 전국경제인협합회(한경협 전신) 회장과 간담회를 연 이후, 전경련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양측은 만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경제단체장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전경련은 제외됐다. 류 회장은 “10년의 세월이 너무 길었다. 오늘 이렇게 만나니 예전에 차인 여자친구를 만난 것 같다”며 “이 대표가 올해 신년 회견에서 다시 성장의 길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데에 적극 동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공개로 전환된 자리에서 양측은 상법 개정안을 두고 맞붙었다. 한경협이 상법 개정의 문제점을 언급하며 “핀셋 규제로 완화해달라”고 요청하자 이 대표는 “투자자가 갖는 시장 불신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않으면 기업 경쟁력도 높이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배임죄 폐지엔 일정 부분 공감이 있고, 자본시장 조치를 통해 자본시장이 활성화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 걱정이 줄어들 수 있다. 국제 표준에 맞추는 만큼 (상법 개정) 흐름은 막기가 어렵다”고 했다고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전했다.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의무를 확대한 상법 개정안은 야당 단독으로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5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과의 민생경제간담회에서 류진 회장으로부터 '경제살리기 10대 과제' 자료집을 전달받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5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과의 민생경제간담회에서 류진 회장으로부터 '경제살리기 10대 과제' 자료집을 전달받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반도체특별법에서의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두고도 양측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한경협은 “대타협 물꼬를 터 달라”라며 사실상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요청했지만, 이 대표는 “근로 유연 시간을 6개월 간격으로 바꾸는 건 고용노동부가 조치를 하면 되고, 총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고 수당을 지급하는 조치를 한다면 현행 제도 내에서 운영도 가능하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표했다.  

다만 이 대표는 네거티브 규제(금지된 것을 제외하고 모두 허용하는 규제)적용, 국내 생산 촉진 세제 등 기업 활성화 방안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조 대변인은 “이 대표가 회복과 성장을 위해 다음에 주목하려는 게 규제 개혁 이슈”라며 “실사구시적으로, 규제리스트를 전수조사해서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규제를 정돈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당내에선 불만도 터져나왔다. 김남근, 김영환, 민병덕, 오기형 민주당 의원 등은 “한경협은 정경유착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정경유착 근절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혀야 한다”며 이날 회동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성명서에 포함된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이 대표가 실용주의를 내세워 친(親) 기업 노선을 가더라도, 기업이 사회에 그간 막대한 손해를 끼쳐온 데에 사과는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