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의회 연설은 이전에도 논란이 많았지만 이번만큼 대통령이 야당에 격한 반감을 표출한 적은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4일(현지시간)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드러난 트럼프 대통령과 야당인 민주당 사이의 날 선 적대감을 두고 뉴욕타임스(NYT) 백악관 출입기자 매기 하버만은 이렇게 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후 처음 한 의회 연설은 친트럼프와 반트럼프로 두쪽 난 미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5 대선은 역사적인 대승리였다”는 자축으로 연설을 시작하자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은 기립박수와 함께 “USA!”를 연호하며 분위기를 달궜다.
트럼프 대통령이 “큰 승리로 수십 년간 본 적이 없는 (통치)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야유를 보냈고, 앨 그린 하원의원은 “당신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항의하며 연설을 끊었다. “소란을 피우면 퇴장시키겠다”는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의 경고에도 큰 소리로 항의한 그린 의원은 결국 의회 경호원에 의해 밖으로 쫓겨났다. 연설 시작 후 채 5분이 안 됐을 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장 민주당 정권 공격에 들어갔다. “우리는 전임 행정부로부터 경제 재앙과 인플레이션 악몽을 물려받았다”며 불법 이민, 친환경 정책, 통상 정책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조 바이든 행정부를 맹비판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쉴 새 없이 기립박수를 하며 성원을 보낸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노 킹(No King)’ ‘가짜(False)’ ‘저것은 거짓말(That’s a lie)’ 등이 적힌 팻말을 들어보이며 무언의 시위를 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거의 유일하게 박수를 친 대목은 “미국은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3500억 달러를 보냈다”고 했을 때였다. 바이든 정부 주도로 미국이 수천억 달러를 지원했음에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취지의 불만을 표하는 장면이었는데, 반트럼프 성향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일부 진보적 민주당 정치인들이 박수를 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지난달 28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노딜 회담’ 이후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중단이라는 초강경수를 둔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반어적 표현으로 해석됐다.
이날 총 100분간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요지는 집권 1기 때보다 전방위로 강화된 ‘미국 우선주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요약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약 100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400개 이상의 행정조치를 취했다. 많은 사람이 제 임기 첫 달을 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근거나 출처는 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어를 미국의 공식 언어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북미 ‘데날리산’을 윌리엄 매킨리 전 대통령 이름을 따 ‘매킨리산’으로 바꾸기로 했다며 “결코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연설 뒤 민주당 측 ‘대응 연설자’로 나선 얼리사 슬로킷 상원의원은 “트럼프의 정책이 미국인들에게 큰 비용을 초래하고 안전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80년대에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해서 다행”이라며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 같은 독재자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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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