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비동의 강간죄 및 성범죄 처벌 강화 3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정혜경 의원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과 함께 조기 대통령선거 가능성이 떠오르면서 비동의간음죄(강간죄)를 둘러싼 입법 찬성·반대 청원에도 불이 붙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국민 동의 청원을 독려하거나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비동의간음죄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가해자의 ‘폭행 또는 협박’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바꾸자는 게 핵심이다. 현행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이 입증돼야 강간죄가 인정된다는 의미다.
5일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X(옛 트위터) 등에는 “동의 없으면 강간”, “조속히 법을 제정하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지난해 말 국민 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청원 두 건이 국회 상임위원회 회부 요건(30일 이내 5만명 동의)을 충족했다는 내용과 함께 법안 취지 등을 쓴 글이었다. 두 청원인은 “성관계 동의를 받지 않은 명확한 잘못이 가해자에게 있다면서도 무죄가 나오는 현실”, “피해자가 술에 취했거나 공포로 저항하지 못한 경우 폭행과 협박이 없었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9년 9월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강간죄 개정을 위한 총궐기'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반면 지난달 17일 공개된 ‘비동의강간죄 입법 반대에 관한 청원’도 동의 수가 5만명을 넘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비동의간음죄에서 말하는 ‘동의’의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무고(誣告)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의견이 공유됐다.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지난 3일 “지금 헌재(헌법재판소)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입법 반대 청원 링크를 공유하는 글이 올라왔다. 직장인 조모(30)씨는 “동의의 방식을 일일이 법안에 열거할 것도 아닌데 누가 어떻게 ‘동의’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네티즌은 정치인 홈페이지 등에서 의견을 묻고 답을 받아내기도 했다. 지난 3일 홍준표 대구시장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인 ‘청년의 꿈’에는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하면 죄 없는 2030대 남성들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하고도 한순간에 강간범으로 몰리며 교도소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시장님의 의견이 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2030 청년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홍 시장은 이 글에 “반대합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점쳐지자 최근 몇 년간 대선·총선 국면에서 자주 등장했던 비동의간음죄를 둘러싸고 입법 청원이 또 충돌하는 모양새다. 비동의간음죄는 젊은 층에서 젠더 갈등 소재로 떠오르며 여야 모두 외면하기 어려운 이슈가 됐다. 여성가족부는 2023년 ‘제3차 양성평등 기본계획(2023~2027년)’에 비동의간음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공개했다가, 법무부가 반대 취지의 “신중 검토” 의견을 밝히면서 9시간 만에 번복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해 4·10 총선 정책 공약에 비동의간음죄를 포함했다가 “실무적 착오”라며 철회했다. 이날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오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3일 홍준표 '청년의 꿈' 답변. 홈페이지 캡처
반복되는 논란에 대해 김희균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동의간음죄는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많이 도입하고 있지만,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부작용도 있다”며 “법적인 기준과 일반인의 인식이 동떨어져 있을수록 사회적인 혼란이 크다. 공청회를 여는 등 공론화 과정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