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조지호 "설마 하겠나" 김봉식 "머리 하얗다"…계엄 그날 안가에선

 조지호 경찰청장(왼쪽)과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뉴시스

조지호 경찰청장(왼쪽)과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뉴시스

설마 하겠습니까….(조지호 경찰청장)
머리가 하얗습니다….(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이 지난해 12월 3일 오후 7시20분쯤 서울 삼청동 안전가옥(안가) 모임에서 ‘계엄 선포’ 이야기를 듣고 나와 나눈 말이다. 김 전 청장은 조 청장에게 “FTX(야외기동훈련) 그런 것이겠죠?”라고 되묻기도 했다.

 

조지호 “尹이 비상계엄 한다고 해 ‘뜨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10차 변론에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 헌법재판소 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10차 변론에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 헌법재판소 공동취재단

중앙일보가 입수한 조 청장의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에 따르면 조 청장은 지난해 12월 3일 저녁 김 전 청장과 함께 삼청동 안가에 호출돼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조 청장이 대통령 안가에 간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조 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퇴근을 하려고 옷을 갈아입는데 박종준 경호처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후 7시 조금 넘어서 경호처장이 (데리러) 왔고 김 전 청장과 함께 경호처장의 차를 타고 안가까지 이동했다”고 밝혔다. 조 청장은 당일 저녁 한 언론사 기자와의 저녁 약속도 취소하고 윤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고 한다.

조 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안가) 1층에 있는 방 문을 여니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있었다. 대통령께서 저에게는 ‘오랜만이네요’라고 하셨고, 김 전 청장에게는 ‘오랜만이네요. 얼마만이지?’ 물어 김 전 청장이 ‘한 10년 만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회상했다.

조 청장은 이후 윤 대통령이 시국에 관한 불만을 털어놓다 비상계엄을 해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조 청장은 “주로 국회 이야기였다. 탄핵, 특검, 예산 관련 내용, 종북 좌파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러다 비상계엄을 하신다고 해서 ‘뜨아’했다”고 기억했다. 모임을 마친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먼저 안가를 떠났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이 남아 이동할 차량을 기다리다가 “머리가 하얗다” “설마 하겠느냐”는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그 뒤 김 전 청장은 오후 8시 7분쯤 사무실에서 조 청장에게 전화해 56초간 통화했다고 한다. 해당 통화에서 김 전 청장은 “잘 들어가셨습니까? 비상계엄을 한다는데 부대가 4~5개 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고, 이에 조 청장은 “속으로 ‘비상계엄을 하지도 않을 것인데’라고 생각하며 ‘알겠다’고 답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박현수 “尹 정신상태 온전치 않아”…조 “의원 체포했으면 하야해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헌법재판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헌법재판소

이날 삼청동 안가 모임에선 김 전 청장이 지난달 13일 헌법재판소에 나와 진술한 ‘2200 국회’가 적힌 A4용지도 분배됐다. 조 청장도 검찰에서 “윤 대통령 말씀이 끝나니 김 전 장관이 A4용지를 나눠줬다. 글자 크기는 추정컨대 16~20포인트 정도였다”며 “첫 줄은 기억이 안 날 수가 없다. ‘2200 국회’, ‘2300 민주당사’라고 되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A4용지의 4분의3 정도 글이 차 있었던 것 같다. 누가 저한테 보고했으면 뭐라고 할 정도의 조악한 수준이었다”고 했다. 조 청장은 “지나고 나서 보면 22시에 국회를 접수한다, 23시에 민주당사를 접수한다는 내용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이 A4용지를 경찰청장 공관으로 들고 와 거실 탁자에 뒀다고 한다. 조 청장은 “제 처가 A4용지를 보고 ‘이게 뭐예요?’라고 하길래, ‘몰라 계엄 한다는데’라고 했다”며 “아내가 ‘김어준의 꽃도 있네’라며 ‘재수없다고 찢어버리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조 청장은 아내의 말을 듣고 종이를 찢어 1층 주방 휴지통에 버렸다고 한다. 그는 “계엄군이 접수할 기관들이지 경찰이 뭘 해야 한다고 쓰여있던 것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조 청장이 김 전 장관과 비화폰으로 처음 전화 통화한 것도 계엄을 앞둔 이날 오후 9시30분~10시쯤이었다. 조 청장은 “김 전 장관이 일방적으로 ‘국방부 장관입니다. 비상계엄 선포가 늦어질 것 같습니다’라고 하길래 속으로는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전화를 끊고 집사람에게 ‘비상계엄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며 “저로서는 ‘그것 봐, 내 말 맞제’라고 확인을 시켜준 것이다”고 진술했다. 조 청장은 “공직 경험상 이 비상계엄은 선포되지 않을 가능성이 100%라고 보았기 때문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 청장은 계엄해제 이후인 4일 오전 6시 23분 박현수 당시 행안부 경찰국장(현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과도 15분간 통화했다. 박 국장 조서에 따르면 두 사람은 “대통령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박 국장이 “계엄이 성공했다면 민란이 일어나고 대통령이 하야했을 것”이라고 말하자, 조 청장은 “여야 당 대표와 국회의원을 체포했으면 대통령은 이번 주말쯤 하야해야 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