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24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가 입주한 건물에서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 뉴시스
법원이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 결의 중 집중투표제 도입만 효력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안건은 효력을 잃게 됐다. 고려아연은 당장 다음 정기 주주총회에서 MBKㆍ영풍 측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것은 일단 막았지만, 임시 주총에서 제한된 MBKㆍ영풍 측의 의결권이 살아나면서 양측의 표 대결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부장 김상훈)는 7일 MBKㆍ영풍이 제기한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서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임시주총서 가결된 안건 중 집중투표제 도입을 제외한 ▶이사 수 상한 설정(1-2호) ▶액면분할(1-4호)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1-6호) ▶ 배당기준일 변경(1-7호) ▶분기배당 도입(1-8호) 안건이 모두 효력을 잃게 됐다.
재판부는 고려아연이 호주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을 활용해 영풍 지분의 10.3%를 취득하고 경영권 방어 전략을 활용한 게 부당한 지배력 행사라고 판단했다. 임시 주총 하루 전 ‘상호주 제한’으로 MBKㆍ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것은 잘못됐다는 의미다. 법원 판단에 따라 영풍의 의결권(지분율 25.42%)도 살아나게 됐다.
하지만 고려아연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추진한 집중투표제의 효력은 받아들여졌다. 법원이 집중투표제 효력을 인정한 만큼 당장 이달 말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MBKㆍ영풍이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기는 어렵게 됐다. 집중투표제는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소수 주주라도 선호하는 일부 후보에 표를 몰아줘 선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현재 지분율이 MBKㆍ영풍보다 뒤처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측에 유리하다.
향후 고려아연과 MBKㆍ영풍의 경영권 분쟁은 더욱 첨예해질 전망이다. 특히 이번 결정으로 MBKㆍ영풍은 의결권 회복해 적극 공세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재판부의 결정으로 고려아연 측이 선임한 신규이사의 직무집행도 정지됐다. 이에 따라 MBKㆍ영풍이 주주총회를 다시 소집해 경영진 교체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변수는 소액주주 결집이다. 양측 모두 소액주주 설득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해졌다. 고려아연 측은 최근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으로 먹튀 논란이 불거진 MBK측의 도덕성 문제를 부각할 수도 있다.
이날 영풍·MBK는 법원 결정이 난 뒤 입장문을 통해 “법원은 자본시장과 고려아연의 주주들을 우롱한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의 불법 행위에 대해 철퇴를 내린 것”이라며 “법질서를 무시하는 최윤범 회장과 관련 인물 모두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3월 말로 예상되는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신임 이사진이 선임될 것”이라면서 “공정하고 정당한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주주가치와 기업가치가 회복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