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괜괜'을 연출한 김혜영 감독. 아이들에게 '무장해제' 당하는 어른들을 그리고 싶었다는 그는 "주인공 인영(이레)에게 자신의 밝은 면이 투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바이포엠스튜디오
주문을 외는 듯한 제목의 이 영화는 김혜영(43)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한 그는 그간 ‘말맛’ 넘치고 매력적인 인물이 나오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스물’(2014), ‘극한직업’(2018) 등 이병헌 감독 작품에 조감독으로 참여했고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에선 연출로 함께했다. 가장 최근 연출작은 쿠팡플레이 시트콤 ‘유니콘’(2022). 그는 ‘괜괜괜’으로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청소년 성장물에 도전했다.
‘괜괜괜’은 김 감독의 표현을 빌자면 “좀 시지만 금방 싱그러워지는, 비타민 같은” 영화다. 지난 6일 만난 김 감독에게선 씩씩하고 맑은 주인공 인영(이레)의 모습이 묻어났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대단한 교훈을 느끼기보단, 관객들이 그냥 웃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는 젊은 관객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순항 중이다. 지난달 26일 개봉 후 9일까지 총 9만 3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선 청소년 심사위원단이 뽑는 제네레이션 K플러스 부문 최고상 수정곰상을 받으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괜괜괜' 속 서울국제예술단원들은 시종일관 밝음을 유지하는 인영(이레, 오른쪽)과 함께하며 조금씩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뛰어난 나리(정수빈)는 인영 덕분에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다. 사진 바이포엠스튜디오
인영은 공연 도중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가난하단 이유로 예술단 친구들로부터 험담을 듣는다. 그러나 ‘괜괜괜’이란 제목처럼 인영에게는 모든 것이 괜찮다. 남사친 도윤(이정하)과 등굣길에 나누는 말장난, 맛난 급식을 양껏 먹는 데서 오는 행복 등을 놓치지 않으며 ‘초긍정’의 태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인영이는 진취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려는, 밝고 맑은 캐릭터이길 바랐어요.” 김 감독은 인영을 소개하며 “그럼에도 힘든 티를 못 내는 성정은 인영의 결핍”이라고 덧붙였다. 인영 외에도 영화 속 캐릭터들은 자신만의 결핍이 있다. 예술단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나리(정수빈)는 센터로서의 부담과 엄마의 압박을 크게 느낀다. 까칠한 마녀 선생님 설아는 무용수로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남모를 외로움이 있다. 김 감독은 “‘괜괜괜’을 통해 결핍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이루는 ‘앙상블’을 그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인영(이레, 왼쪽)은 완벽주의 단장 설아(진서연)의 일상도 바꾼다. 오갈데 없는 인영을 받아주며 "집에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던 설아는 어느새 인영과 '사람답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사진 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에선 블록버스터급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대신 섬세한 인물 묘사를 보는 재미가 있다. 최애 예능이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김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지점이다. 그는 “사람들의 보편적 감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괜괜괜’에 한국무용 설정이 들어간 이유기도 하다. “무대 어느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서도 질투를 느끼고, 돋보이고 싶은 욕심과 타인과의 비교에서 생기는 좌절을 모두 경험할 수 있어요. 희로애락을 담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김 감독의 차기작은 다음달 3일 티빙에서 공개되는 드라마 ‘내가 죽기 일주일 전’. 성장 서사가 들어간 청춘 판타지 로맨스물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그는 털털하게 답했다. “성장 전문 감독이라는 분도 계시는데, 어떤 이야기든 ‘성장’의 요소를 담고 있지 않을까요? 다양하고 매력적인 작품에 도전하며 저만의 색을 발견해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