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사업 속도 더 빨라진다…'억대' 부담금은 변수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요즘 재건축 시장이 왁자지끌하다. 발목을 잡고 있던 규제가 잇따라 풀리며 사업이 속도를 내고 덩달아 몸값도 뛴다. 바야흐로 ‘재건축의 봄’이다. 서울 강북 등 낡은 주거지의 재개발도 탄력을 받고 있다.  

빈 땅을 찾기 힘든 도심에서 새로운 주택을 늘리는 방안이 마땅찮다. 기존 주택을 허물고 더 많은 수의 주택을 새로 짓는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활성화는 바닥으로 떨어진 주택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청신호로 반길 일이다.

재건축 사업이 활기를 띠며 몸값도 뛰고 있다. 사진은 사업승인 단계에 접어들며 재건축이 본궤도에 오른 여의도. [사진 영등포구청]

재건축 사업이 활기를 띠며 몸값도 뛰고 있다. 사진은 사업승인 단계에 접어들며 재건축이 본궤도에 오른 여의도. [사진 영등포구청]

지난해 정비계획 결정 구역 크게 늘어 

 
지은 지 50년에 가까운 아파트가 몰려 있는 여의도에서 대교가 지난달 말 사업승인(사업시행계획인가)에 필요한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다. 조합은 올해 안에 시공사 선정과 사업승인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앞서 한양이 지난해 심의를 통과하고 사업승인을 준비 중이다. 2023년 말 시공사를 선정한 공작도 사업승인을 앞두고 있다. 사업승인 이후엔 착공 전까지 조합원·일반 분양계획 수립만 남겨놓는다.

이미 조합까지 설립해 정비계획을 수립 중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서도 2구역이 올해 하반기에 시공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규제 완화로 재건축·재개발 활기
여의도·압구정에선 올해 시공사 선정
'패스트트랙' 도입으로 절차 단순화
부담금 폐지법 국회 문턱 못 넘어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14개 단지가 재건축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14단지가 지난 6일 재건축 밑그림인 정비계획을 확정했다. 3100가구를 허물고 2023가구 많은 5123가구로 재건축한다. 지난해 6단지에 이은 두 번째 정비계획 결정이다. 이기재 구청장은 "연내 14개 단지 모두 정비계획 결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재건축·재개발 정비계획을 결정한 구역이 2023년 35곳에서 지난해 52곳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벌써 10곳이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지난해 말 선도지구를 선정한 분당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가운데 중동(부천)·산본(군포)이 올해 들어 전체 청사진인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분당 등도 기본계획 수립을 서두르고 있다. 기본계획이 정해지면 구역별로 정비계획을 세우게 된다.

재건축 활기는 문재인 전 정부 때 절정에 달했던 규제가 대폭 풀린 효과다. 재건축 여부를 가르는 안전진단 문턱이 낮아지면서 무엇보다 목동이 큰 혜택을 봤다. 6단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13개 단지가 안전진단을 넘지 못하다 2023년 재건축 판정 기준이 확 내려간 뒤에서야 모두 통과했다. 안전진단에 붙잡혀 있던 서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 등 올림픽 아파트 3개 단지도 2023년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이중 올림픽훼밀리타운이 지난해 11월 정비계획안을 공개하며 사업계획 수립을 위해 잰걸음을 하고 있다.

조합 설립 요건 완화되고 통합심의 확대 

 
이미 안전진단을 거친 구역들의 사업에 가속도가 붙은 것은 각종 영향에 대한 통합심의 덕이다. 정비계획 변경과 사업승인에 필요한 교통·건축·경관·교육·환경 등 평가를 각각 따로 개별심의해야 했으나 지난해 초부터 통합해 심의할 수 있게 됐다. 2년 이상 걸리던 심의 기간이 6개월 정도로 줄어들었다. 대교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통합심의를 3개월 만에 통과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부터 11차례에 걸쳐 대교 등 모두 26곳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통합 심의했다.  

사업이 순항하면서 재건축 단지 가격이 강세다. 대교 전용 95㎡가 1월 역대 가장 비싼 24억원에 거래됐다. 앞선 최고가인 지난해 7월 22억8000만원보다 1억2000만원 올랐다. 압구정 2구역 전용 170㎡는 지난달 직전 거래가격보다 3개월 새 7억5000만원 뛴 78억원에 거래되며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목동 14단지 전용 108㎡와 55㎡의 지난달 실거래가가 각각 21억원과 13억원을 넘겼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1억~2억원가량 상승했다.    

앞으로 재건축 사업 속도가 더 빨라질 전망이다. 재건축 문턱이 사실상 없어지고 심의 기간도 추가로 단축되면서 소위 ‘패스트트랙’을 타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말 관련 법이 개정돼 5월부터 재건축 조합 설립 동의요건이 완화된다. 지금까지는 동별과 단지 전체 동의요건이 각각 과반수·75% 이상이었으나 앞으로 각각 3분의 1 이상· 70% 이상이면 된다. 사업승인 통합심의 대상이 소방설계·재해영향으로 확대된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재건축 안전진단이 이름도 바뀌면서 생겨난 지 31년 만에 유명무실해진다. 6월부터 안전진단 명칭이 ‘재건축진단’으로 변경된다. 재건축 여부를 판단하는데 건물 안전성을 따지지 않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건물이 구조 등에서 안전해도 재건축이 가능해 더는 재건축의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재건축진단은 이미 상당 부분 사업을 진행한 사업승인 전까지만 실시하면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비구역 지정 전에도 조합설립 추진위를 구성할 수 있고 사업승인 이후 조합원 분양 통지 기한이 120일에서 90일로 단축되는 점도 사업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부담금 폐지법안 국회 계류 중 

 
여기다 가속도가 붙는 재건축 사업이 날개까지 달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재건축·재개발 촉진 특례법’ 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다. 이 법안은 심의 통합을 넘어 절차 통합을 담고 있다. 사업 초기의 기본계획과 정비계획을, 조합 설립 후 사업계획 수립 단계의 사업승인과 관리처분(분양계획)을 각각 동시에 처리할 수 있게 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재건축·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초기와 막판의 인허가에 진이 빠지는데 절차가 단순해지면 사업이 한결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잇단 규제 완화에도 남아있는 ‘가시’가 성가시다. 재건축부담금이다. 지난해 대폭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강남 등 집값이 비싼 지역에선 억대로 예상된다. 강남 1호 부과 대상인 서초구 반포동 반포현대(현 반포센트레빌아스테리움)는 자료 제출을 미루며 버티기를 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폐지키로 했고 폐지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건축 속도가 붙은 압구정 등 강남과 여의도, 목동, 1기 신도시 등에서 주민들이 재건축부담금에 놀라 ‘억’ 소리를 내며 제동을 걸기 전에 가시는 미리 뽑아버리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