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팀 데이터만 수십만개, 개고생했다" SK 최단경기 우승 비결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든 전희철 감독. 김경록 기자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든 전희철 감독. 김경록 기자

"매 경기 상대 팀 플레이 장면 4000개를 분석합니다. 3박 4일간 코칭스태프와 밤을 새우며 '개고생' 해서 쌓은 수십만 개의 데이터가 우리의 숨은 힘입니다." 

 프로농구 서울 SK 전희철(52) 감독은 '역대 가장 빨리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든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난 16일 원주 DB를 꺾고 SK는 원정경기에서 통산 네 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46경기 만인데, 2011~12시즌 DB(당시 동부)의 47경기에서 한 경기 줄인 '최소 경기 우승' 신기록이다. 전 감독은 SK 감독 첫 시즌이던 2021~22시즌 통합우승(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석권)을 이끌었다. 세 시즌 만에 다시 기회를 잡은 그는 "첫 우승 땐 초보 사령탑이어서 마냥 좋았다. 4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우승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감독의 책임감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더 기쁘다"고 말했다.

 시즌 전 SK를 우승 후보로 꼽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전력 보강이 없었고, 주축 선수인 김선형(37), 오세근(38)이 노쇠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잘하면 플레이오프(PO) 진출 마지노선인 6위권'이라는 게 주된 평가였다. 그런 SK가 이변을 일으켰다. 시즌 초반 9연승, 후반기 10연승 등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며 선두를 질주했다. 그런데도 전 감독은 "지금도 SK가 강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PO를 거쳐 챔피언이 돼야 웃을 수 있다. 지금은 정규리그 우승팀 타이틀만 달았을 뿐"이라고 낮췄다.

통합 우승이 목표인 전희철 감독. 김경록 기자

통합 우승이 목표인 전희철 감독. 김경록 기자

 고비도 있었다. SK는 지난해 12월 10일 KCC전을 시작으로 3경기를 내리 패했고, 팀 분위기가 깊이 가라앉았다. 위기의 순간에 전 감독의 '풍부한 경험'이 빛을 발했다. '농구대잔치' 시절인 1990년대 고려대 수퍼스타였던 전 감독은 프로에 와 동양과 KCC를 거쳤고, 2008년 SK에서 은퇴했다. 이후 SK 2군 감독과 전력분석 코치, 구단 운영팀장 등 지도자와 프런트를 오갔다. 2011년부터 10년간 수석코치로서 문경은 당시 감독을 보좌했다. 그는 "코트 밖 세상을 겪으면서 스타 의식과 불같은 성격을 버리게 됐다. 감독이 카리스마만 앞서면 요즘 MZ세대 선수들 조직력은 모래알이 된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는 '밀당 리더십'을 터득했다"고 설명했다.

 위기 상황에서 전 감독은 라커룸 대신 컴퓨터 앞으로 향한다. '얼리 어답터'인 그는 전술도 작전판이나 보드 대신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상한다. 팀플레이를 해친 장면, 만족스러운 플레이가 나오는 장면 등을 뽑은 뒤 선수단을 부른다. 호통 대신 디테일한 설명을 전하는 전 감독의 성의에 선수단들은 각성한다. 그리고 나면 다시 연승 가도다. 스트레스를 푸는 법도 '얼리 어답터'답다. 게임광인 그는 "경기에 진 날엔 조용히 방에 가 실제 레이싱카의 내부를 그대로 구현한 운전석 핸들을 잡고 레이싱 게임을 즐긴다. 시속 250㎞로 가상의 트랙을 달리면 기분이 풀린다"며 웃었다.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1위 SK는 4강 PO에 직행한다. 세 시즌 만의 통합 우승(정규리그·챔프전 석권)이 다음 목표다. 전 감독은 "부임 후 네 번째 시즌인데, 두 차례 통합우승한다면 'SK 왕조'가 열릴 것"이라며 "챔피언이 되면 첫 통합우승 때처럼 팬들을 초대해 좋은 음식을 먹으며 술 한잔 기울일 것"이라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