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공장서 인간과 협업하는 휴머노이드 상용화할 것”

 혁신창업의 길 77. 에이로봇 엄윤설·한재권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에이로본의 엄윤설 대표와 한재권 CTO가 14일 경기도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의 창업보육센터에 있는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에이로본의 엄윤설 대표와 한재권 CTO가 14일 경기도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의 창업보육센터에 있는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 10여년간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 휴머노이드의 현란한 진화를 지켜봐 왔는데, 어느 순간 강력한 경쟁자가 불쑥 솟아올랐다. 유니트리를 비롯한 중국 휴머노이드들의 본격 등장이다. 2023년 출시된 유니트리 H1은 초당 6m의 속도로 달릴 수 있고, 최근 중국 춘절 특집 방송에서 인간 무용수들과 화려한 공연을 펼쳐 화제가 됐다. 유니트리에 따르면 휴머노이드는 2000만 원대, 4족 보행 로봇개는 대당 170만원의 가성비를 보여준다. 다음 달이면 베이징에서 로봇 마라톤까지 열린다고 한다. 이건 더이상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이 아니다. 게으른 낮잠에서 갑자기 깨어난 이의 ‘현실 공황’(present panic)이라 불러야 할 판이다. 20년 전 처음 등장한 우리의 휴보는 어디로 갔을까. 그나마 한국 기업 현대차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걸까. 지난 14일 오후 경기도 안산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를 찾아가는 기자의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국내 최고의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스타트업 에이로봇이 자리한 곳이다. 한재권(50) 로봇공학과 교수와 그의 아내 엄윤설(48)씨가 2018년 공동창업한 기업이다. 최고경영책임자(CEO) 겸 대표이사는 엄 씨가,  한 교수는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었다. 엄 대표는 최근 진행 중인 시리즈A 투자 유치를 위한 투자사 회의가 예정보다 길어져, 약속보다 늦게 인터뷰에 합류했다. 캠퍼스 내 창업보육센터 4층에 자리잡은 에이로봇 연구실엔 연구원 한 명이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쓰고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가 종이컵을 잡는 동작을 학습시키고 있었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부부, 연구 동료, 그리고 동업자

  

-어쩌다 부부가 함께 창업하게 됐나.  
우린 동업자이면서, 오랜 연구 동료이기도 하다. 출발은 달랐다. 나는 고려대에서 기계공학과, 엄 대표는 숙명여대에서 공예를 전공했다. 고교 조인트 동문회에서 만난 사이다. 학부와 대학원 석사를 마친 후 당시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와 로봇 스타트업 로보티즈에서 일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휴머노이드를 깊게 연구해보고 싶었다. 당시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아내를 설득해 미국 유학을 떠났다. 나는 버지니아공대에서 로봇을, 아내는 버지니아 커먼웰스대에서 키네틱(kinetic) 아트를 공부하면서 관심사가 가까워졌다. 귀국 후엔 한 때 로보티즈에서 같이 근무했다. KAIST 휴보가 1등을 한 미국 DARPA(국방고등연구계획국) 로보틱스 챌린지에 아내와 함께 출전하기도 했다. 이후 나는 한양대에서, 아내는 숙대에서 교수로 근무하다 결국 꿈을 좇아 2018년 에이로봇을 창업했다.
(한 교수는 세계적인 로봇 과학자로 평가받는 데니스 홍 버지니아공대 교수의 제자다. 홍 교수가 이끄는 로멜라 로봇연구소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등을 직접 설계하고 인공지능을 응용하는 기술을 배웠다. 이런 경험이 에이로봇 창업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

-에이로봇 휴머노이드의 성능이 궁금하다.
지금 동작을 학습 중인 최신형 휴머노이드 로봇이 ‘앨리스’다. 키 160㎝, 몸무게 45㎏. 걷는 건 1초에 1m, 손동작은 1초에 3m를 움직이는 속도다. 운동 잘하는 여성이 앨리스의 목표다. 내년부터 실증사업을 통해 공장 자동화에 도전할 예정이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탑재해 사람과 소통하는데도 문제가 없다. 이달 초 스페인에서 열린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는 앨리스에 LG유플러스의 AI 익시(ixi)를 탑재해 출품했다. 3년 뒤인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가격은 대당 5000만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제 로보컵 대회에 출전한 에이로봇팀. [사진 에이로봇]

지난해 7월 국제 로보컵 대회에 출전한 에이로봇팀. [사진 에이로봇]

 


유니트리 2000만원 로봇은 과장 

 

-에이로봇만의 기술력을 말하자면.
국내에서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는 기업은 거의 전무하다. 현재 오준호 KAIST 교수가 창업한 레인보우로보틱스 등이 있지만, 지금까진 다리 대신 바퀴를 기반으로 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휴보는 2018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2족보행 기술을 갖춘 기업은 국내에서 에이로봇이 사실상 유일하다. 우리는 로봇의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액추에어터(actuator)에도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모터가 회전운동뿐 아니라 직선운동도 할 수 있게 하는 ‘리니어(linear) 액추에이터’가 그것이다. 사람 다리처럼 근육이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라 훨씬 더 효율적이다. 이런 방식은 미국 테슬라와 앱트로닉, 그리고 우리 에이로봇뿐이다.
 

-2018년 창업인데, 지난해 시드 투자 유치면 많이 늦었다.
에이로봇은 창업 때부터 휴머노이드를 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을 상용화하겠다고 사업 목표를 세운 기업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 투자를 받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간 별의별 짓을 다 하며 근근이 버텨 왔다. 그러다 최근 들어 미국에 이어 중국까지 인공지능을 더 한 휴머노이드 바람이 불면서 국내도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해야 겨우 시드(seed) 투자를 받은 이유다.  
 

-미국뿐 아니라 최근 유니트리 등 중국 로봇의 성능도 놀라운데.  
최근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솔직히 훌륭하다. 중국은 정부 차원의 대규모 지원을 받으며 연구와 상용화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유니트리 같은 기업이 2000만 원대에 휴머노이드를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이런 지원 덕분이다. 하지만 대당 2000만원 정도라고 발표한 건 과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00만 원대는 손도 없는 깡통 로봇 수준이다. 공개된 동영상처럼 춤을 추고, 말을 하는 건 자동차처럼 고급 옵션을 붙이는 격이다. 그렇게 하면 1억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에이로봇 초창기인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당시 휴머노이드 로봇 다이애나가 스키를 타고 있다. [사진 에이로봇]

에이로봇 초창기인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당시 휴머노이드 로봇 다이애나가 스키를 타고 있다. [사진 에이로봇]

 

공장일 하는데 덩크슛까진 필요 없다

 

-우리 로봇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  
공장의 조립공정에서 일하는데 박사 학위가 필요할까. 미국과 중국의 휴머노이드 기술이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공장 현장 실무에 투입하는데 덩크슛하고 텀블링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바퀴가 아닌 다리가 필요한 건, 환경이 나쁜 중소규모 공장에서도 활동하기 위해서다. 에이로봇은 당장 필요한 만큼의 성능과 저렴한 가격을 추구한다. 고객은 그걸 원한다. 물론 지금도 미국 중국의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 밤잠 줄여가며 연구·개발 중이다.
 

-한국도 과거 휴보가 있었다. 어쩌다 한국 휴머노이드가 이렇게 뒤처졌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앞서 있었다. 하지만 이후 정부의 투자도 끊어지고 대기업의 관심도 받지 못해 산업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연구와 함께 시장 도입을 병행하면서 격차를 벌려 나갔다.
 

로봇 공학자가 생각하는 로봇의 미래가 궁금하다.
“2028년이면 단순 반복 작업을 로봇이 대체하는 시대가, 2030년엔 휴머노이드 로봇이 제조 현장에서 사람을 대처하는 모습들을 익숙하게 보게 될 거다. 2050년이면 우리가 말하는 노동은 더이상 인간의 몫이 아닐 수 있다. 우리는 그때쯤 ‘한국에 에이로봇 없었으면 어찌할 뻔했어’라는 얘기를 듣는 걸 꿈꾸고 있다. 에이로봇의 미래는 단순히 사람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로봇과 인간이 협업하는 세상을 만드는 거다.
 

경기도 안산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내 에이로봇 연구실. [사진 에이로봇]

경기도 안산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내 에이로봇 연구실. [사진 에이로봇]

 

한양대 애리카 백동현 부총장

한양대 애리카 백동현 부총장

*백동현 한양대 에리카 부총장
한재권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첨단 산업의 혁신적 연구와 사업화를 통해 산업과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창의적 시도로 미래 로봇 인재 양성과 에이로봇의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그는 본교가 추구하는 목표에 부합하는 우수 사례다. 한양대 에리카는 실용교육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대학을 지향하며, 첨단 산업 분야에서 기술 개발과 산업화를 선도한다고 자부한다.  

 

조경훈 하나벤처스 상무

조경훈 하나벤처스 상무

 
*조경훈 하나벤처스 상무
에이로봇은 CEO 및 CTO가 로봇 분야에서 오랜 기간 종사하며 네트워크와 기술력을 키워왔다. 한양대 로봇공학과를 중심으로 인력수급이 지속적으로 가능한 팀이기도 하다. 특히 리니어 액추에이터를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와 다년간 로보컵 대회 참여를 통한 실전 경험이 강점이다. 선박 및 건설업계에서 실제로 기술이 적용 가능한지 검증하는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혁신창업의 길’에서 소개하는 스타트업은 ‘혁신창업 대한민국(SNK) 포럼’의 추천위원회를 통해 선정합니다. SNK포럼은 중앙일보ㆍ서울대ㆍKAIST를 중심으로, 혁신 딥테크(deep-tech)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대한민국이 ‘R&D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퍼스트 무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 기반한 기술사업화(창업 또는 기술 이전)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취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