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재의 탄핵 각하, 즉시 파면 촉구 기자회견을 동시에 하고 있다. 뉴스1
고즈넉했던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거리는 요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를 외치는 아우성으로 요란하다. 21일 경찰은 헌재 반경 100m 내 집회·시위를 막기 위해 차벽을 세워 이른바 ‘진공 상태’를 만들었지만, 차벽을 넘는 “탄핵 각하” 확성기 소리는 막지 못했다. 헌재 앞에선 소수였던 찬탄파도 점차 모여들어 “윤석열을 파면하라”고 외쳤다. 헌재 주변으로 찬탄·반탄파 분단선이 형성됐고, 각자 이곳 분위기를 장악하려 목소리를 높였다.
이 싸움에 정치권도 가세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연쇄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 앞에서 기세를 올리려 경쟁 중이다. 이처럼 윤 대통령 선고를 앞두고 헌재 정문은 남북 분단선처럼 좌우 진영이 가장 첨예하게 마주한 공간이 됐다.
‘계란 투척’ 이후 “헌재 앞 장악해야”
전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백혜련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고 참석한 의원들은 전했다. 백 의원은 그보다 하루 전인 지난 19일 심야 비상 의총에서 헌재 정문 앞 기자회견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헌재 앞이 극우 집회로 장악돼 있다. 경찰도 불법 집회를 제대로 막지 않는다. 우리도 헌재로 가야 한다’는 취지였다. 투쟁 아이디어 중 의원들의 호응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민주당 권향엽 의원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대통령 즉각 파면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게 다음날(20일) 아침 민주당 원내대표단과 일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헌재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 의원이 윤 대통령 지지자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던진 계란을 맞았던 그 기자회견이었다. 그런 백 의원이 그날 오후 의총에서 “헌재 앞 공간을 장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니 의원들은 박수를 보내며 호응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당분간 민주당은 평일 오전 8시 30분, 오후 5시 30분 두 차례에 걸쳐 상임위별로 조를 나눠 헌재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출퇴근 시간을 겨냥한 것이라고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민주당의 이런 계획은 국민의힘 기자회견에 대한 맞불 성격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미 지난 11일부터 헌재 정문에서 윤 대통령 탄핵 기각·각하를 요구하는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주당보다 아흐레 빨랐다. 시민 집회도 찬탄파는 광화문에 모인 데 반해 반탄파는 일찍부터 헌재 앞에서 시위를 해왔다. 국민의힘 의원 32명은 21일 오전에도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절차적 적법성조차 갖추지 못한 것임이 드러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구는 각하돼야 마땅하다”(김기현 의원)고 주장했다.
1인 시위, 나란히 서서 정반대 팻말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오른쪽)과 국민의힘 수원시을 홍윤오 당협위원장이 각각 윤석열 대통령 파면 촉구 및 탄핵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기자회견은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서로가 ‘윤석열을 파면하라’, ‘대통령 탄핵 기각’ 등 상대의 손팻말을 가렸고, 동시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서로의 목소리는 묻혔다.
1인 시위는 흡사 동상이몽이었다. 이날 오후 헌재 정문에서 박해철 민주당 의원과 한길룡 국민의힘 파주을 당협위원장이 바로 옆에 나란히 서서 시위를 했다. 언뜻 보면 일행처럼 보였지만 둘은 ‘윤석열을 파면하라’, ‘대통령 탄핵 각하!!’로 정반대 팻말을 들고 있었다.
집회, 여의도→광화문→헌재 이동 중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주위가 경찰 버스로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다. 경찰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 당일 갑호비상을 발령해 가용 경찰력 100%를 동원할 예정이며, 선고 전후로 외부인이 헌재 100m 근방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진공 상태'를 만들겠단 방침이다. 뉴스1
특히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당시에는 헌재에서 100m 이상 떨어진 안국역과 종로3가역 사이에서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번엔 1인 시위 등 집회 규제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헌재 정문까지 시위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만큼 헌재 앞 여론전쟁이 치열하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찰은 백혜련 의원 계란 투척 사건 이후로 1인 시위자 30여명을 해산시켰다. 차벽으로 헌재 반경 100m를 ‘진공 상태’로 만드는 경비 계획 또한 실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