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스테파’ 안무코치로 활약했던 정보경 안무, 1세대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한국미의 현대적 해석에 탁월한 양정웅 연출. [사진 국립극장]](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503/22/51848417-798c-491a-ac47-f65ddf177589.jpg)
(왼쪽부터) ‘스테파’ 안무코치로 활약했던 정보경 안무, 1세대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한국미의 현대적 해석에 탁월한 양정웅 연출. [사진 국립극장]
“한국의 미를 춤으로 보여주기 위해 다양성 있는 민속무용을 여성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적인 여성미의 원형이 신윤복의 ‘미인도’잖아요. 단아한 미인도를 정형화된 여성미로 본다면 민속춤을 통해 다이내믹하고 파워풀하고 포용과 조화, 상생의 에너지를 가진 다양한 여성상을 ‘신미인도’로 제시하려는 거죠.”(양) “‘스테파’를 하면서 여성 버전도 꿈꿨거든요. ‘스테파’ 인기가 무용계에 없던 현상인데, 그걸 잘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의 연장선에 이 작품이 있어요. 한국무용이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걸 스테파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정)
미인도에서 막을 열어 ‘신미인도’로 막을 닫는 수미쌍관 구도다. 살풀이·승무·부채춤·북춤·칼춤·탈춤 등 다채로운 민속춤을 통해 액자에 가둘 수 없는 멋진 여성상을 보여준다는데, 민속춤 원형은 볼수 없다. “춤의 형식이 아니라 정서를 재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체적인 정서는 민속놀이를 변형시킨 ‘놋다리밟기’에 담겨 있어요. 고려 공민왕 때 노국공주를 피난시키기 위해 여성들이 몸으로 다리를 놓은 데서 유래한 놀이죠. ‘여성을 이야기하는 민속춤’이라면, 하나의 큰 선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여성들이 몸을 엮어서 누군가를 어딘가로 보낸다는 데서 가녀린 마음들이 모여 아주 큰 강인함이 되는 정서가 느껴지잖아요.”(정)

국립무용단 ‘미인’은 새로운 K패션과 K무용의 만남을 브랜드로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더 큰 도발은 따로 있다. 보그 코리아 등 다양한 패션잡지에서 30년간 스타일리스트로 활약한 서영희가 의상과 오브제 디자인을 맡아 무용공연에서 부수적인 요소로 여겨지던 패션을 안무와 대등한 위치로 끌어올린다. K패션과 K무용을 하나로 묶은 ‘K컬처’ 상품을 세일즈한다는 빅픽처다. 에스파, 아이브 등 K팝 뮤직비디오를 만든 신호승의 무대디자인까지, 미장센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국립무용단 ‘미인’은 새로운 K패션과 K무용의 만남을 브랜드로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오뜨쿠뛰르 컬렉션을 연상시키는 의상과 오브제가 총 500여점이라니, 춤이 가리지 않을까. 오히려 의상과 오브제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 이미지를 확장했다고 한다. “꼭 춤을 춰야 춤이 아니거든요. 서 선생의 옷이 고스란히 보여지는 장면도 있었으면 해서 강강술래를 제안했어요. 강강술래에서 원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개념만 가져와서 의상을 제대로 보여줄 겁니다. 그 장면만큼은 패션쇼가 되는 거죠.”(정) “한복을 어디까지 모던하게 표현할 수 있을 지가 도전인데, 안무가가 춤을 푸는 방법과 내가 한복을 푸는 방법이 비슷해요. 탈춤에서 탈을 없애면 어떠냐, 적삼이 춤에 방해가 되면 소매를 잘라 버리자는 역발상 코드죠. 무용단의 움직임에서 숭고한 느낌을 받았어요. 숨만 쉬어도 춤추고 있는 듯한 경지에 오른 무용수들을 위해 겸허한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서)
서울시무용단 ‘일무’ 등 한국무용 현대화에 성공한 기존 작품에서 칼군무의 에너지가 ‘킥’이었다면, ‘미인’은 다르다. 군무에도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함께 존재하며 시선이 분산되는 독특한 느낌이다. “우리 작품은 군무의 힘보다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군무에서 흩어져 개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색깔들을 빠짐없이 보여주고 싶거든요. 29명이 각자 무용수로서 한국 최고의 국립무용단에 왜 존재하는지 증명하는 무대가 되었으면 해요.”(정)
야심차게 K컬처를 표방한 대형 갈라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정구호의 ‘향연’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양 연출은 ‘다양성’을 강조한다. “제가 민속춤으로 보여주고 싶은 건 다양성과 다채로움이고 ‘향연’과의 차별점도 거기 있어요. 민속무용 자체에 다양한 계층과 지역이 담겨있는 것처럼, 우리 창작진 각자의 취향이 충돌하고 조화해서 다채롭게 펼쳐질 거라 생각합니다. 전체지만 그 속에 다양한 개성이 숨어있는, 김홍도나 신윤복의 민속화처럼요.”(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