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조수미·목진석...월드클래스 거장의 일편단심 '축구 사랑'

축구 유튜브 채널에 깜짝 출연해 해박한 축구 지식을 선보인 영화계 거장 봉준호 감독. 연합뉴스

축구 유튜브 채널에 깜짝 출연해 해박한 축구 지식을 선보인 영화계 거장 봉준호 감독. 연합뉴스

 봉준호, 조수미, 목진석. 자신의 분야에서 월드클래스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기생충(2019년)'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등을 휩쓸며 한국 영화사를 다시 섰다. 성악가 조수미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소프라노다. 지난 40년간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디바(diva)로 활약하며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바둑 기사 목진석 9단은 2000년 전성기의 '바둑 전설' 이창호 9단을 물리치고 포스트 이창호 시대를 연 '바둑 천재'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금메달을 이끈 뒤, 최근 다시 선수로 복귀해 '반상 위 팔색조'로 불린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또 있다. 바로 '축구 덕후'라는 점이다.  

축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봉준호 감독(오른쪽). 사진 유튜브 달수네라이브

축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봉준호 감독(오른쪽). 사진 유튜브 달수네라이브

지난달 신작 '미키 17'이 개봉한 봉 감독은 최근 뜬금없이 박문성 축구해설위원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팬들은 깜짝 놀라게 했다. 박 위원의 유튜브는 축구 전문 채널이다. 봉 감독은 "새 영화 개봉 시기에 감독들은 '홍보 좀비'가 된다. 홍보팀이 출연을 권하는 방송에 나가게 된다. 매일 하는 영화 얘기하지 한 번쯤은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데 나가고 싶었다"며 남다른 축구 사랑을 뽐냈다. 봉 감독은 이날 숫자 '17'이 새겨진 검정 티셔츠 입었는데, '영화와 관련 있는 숫자냐'는 질문에 "'덕배'의 등번호"라며 재치 있게 받아쳤다. 덕배는 맨체스터시티의 스타 미드필더 케빈 더브라위너에게 한국 팬들이 붙여준 애칭이다.  

유럽축구는 물론 K리그까지 섭렵하는 봉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도 축구를 녹였다고 처음 밝혔다. 그는 "원작 소설은 '미키 7'인데, 영화에선 좋아하는 선수 더브라위너의등번호(17번)에 영향을 받아 '미키 17'로 바꿨다. 영화쪽 인터뷰에선 다르게 얘기했다"며 웃었다. 그는 이어 "영화에 티모와 카이캇츠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티모 베르너(토트넘)와 카이하베르츠(아스널 이상 공격수)의 이름에서 따왔다. 시나리오 쓸 때 외국 캐릭터 이름 짓는 일이 어렵다"며 축구 선수 이름을 따 캐릭터를 만드는 이유를 털어놨다.  

축구를 보기 위해 밤잠까지 설치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오른쪽). 뉴스1

축구를 보기 위해 밤잠까지 설치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오른쪽). 뉴스1

봉 감독이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영화와 접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중계 카메라와 선수들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경기장에 가서 보면 (특정 선수의) 장면으로 나뉘지 않고 전체를 봐야 한다. 선수 한 명만 가까운 거리에서 따로 보지 못해 답답하다. 똑같은 슛도 카메라 각도에 따라 더 아름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대표의 '캡틴' 손흥민(토트넘)에게 응원의 메시지도 남겼다. 그는 "손흥민은 명백한 월드클래스다. 하루빨리 (커리어 첫) 우승 트로피를 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조수미는 새벽에 경기를 보느라 밤잠 설치는 '축구광'이다. 2022 카타르월드컵 기간 열린 기자 간담회는 조수미의 축구 사랑이 제대로 드러난 대표 행사다. 마침 그날 한국 축구는 브라질에 1-4로 져 월드컵 16강에서 탈락했다. 몇 시간 뒤 간담회에 참석한 조수미는 "(한국이 지는 바람에)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다. 울었다"면서 "축구를 좋아해서 언제나 약속도 안 잡고 월드컵을 하루 첫 일과로 잡는다. 월드컵을 4년마다 개최하는 건 말도 안 된다. 매년 해야 한다"고 말해 취재진을 폭소하게 했다. 조수미는 음악과 축구의 공통점에 대해 "사람들을 이어주는 보편적 언어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조수미가 부른 '챔피언스(Champions)'는 공식 주제가보다 더 사랑받았다.  

아스널의 열혈 팬인 바둑계 대표 축구광 목진석 9단. 중앙포토

아스널의 열혈 팬인 바둑계 대표 축구광 목진석 9단. 중앙포토

조수미가 축구와 인연을 맺은 건 이탈리아 유학 시절이다. 조수미는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 "이탈리아 유학 시절 아르헨티나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가 나폴리(1984~91년)에서 뛰었다. 학교에 가서 축구를 모르면 대화가 되지 않았다"며 음악과 축구는 내 인생"이라며 축구에 빠진 계기를 설명했다. '괴물 수비수' 김민재가 나폴리 소속으로 2022~23시즌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 트로피를 들자, 김민재 소셜미디어(SNS)에 축하 댓글을 달기도 했다. 당시 팬들은 "전설이 전설에 축하를 건넸다"고 했다.  

목진석 9단은 EPL 아스널의 오랜 팬으로 유명하다. 아스널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벌전이 벌어진 날, 하필이면 대국이 잡힌 적 있다. 소속팀의 바둑리그 포스트시즌 티켓 확보가 걸린 중요한 일전이었다. 대기실에서 TV를 흘깃 쳐다보곤 아쉬운 표정으로 대국장에 들어선 목진석 9단은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해 승리했다. 통쾌한 승리였지만 그는 기쁨을 만끽할 여유가 없었다. 곧장 집으로 달려가 놓친 경기를 챙겨본 뒤, 이튿날 조기축구까지 참석한 건 목진석 9단의 유별난 축구 사랑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목진석 9단은 축구를 통해 바둑을 잊기도 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0 남아공월드컵 당시엔 목진석이 자기 블로그에 프로바둑 선수들로 축구 국가대표를 짠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두 팀을 만들었는데 감독이 각각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이었다. 자신은 공격형 미드필더, 이세돌 9단은 스트라이커에 배치했다. 그러면서 "나는 오로지 공격만 노리는 이기적인 플레이메이커. 넓은 시야에 의한 킬 패스와 발재간을 갖췄지만 통할 때와 안 통할 때의 기복이 심하다. 최근 살이 쪄서 몸이 둔해졌다"고 해설했다. 이세돌 9단에 대해선 "부동의 한국 최고 스트라이커다. 화려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는 것을 즐긴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