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티켓값 4~5만원"…'선선선예매권'까지 등장, 팬들 분통

23일 경기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5 KBO리그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T 위즈의 경기를 찾은 관중들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경기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25 KBO리그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T 위즈의 경기를 찾은 관중들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한국 프로야구(KBO) 시즌이 22일 개막하면서 야구팬들의 ‘피켓팅(피가 튈 정도로 치열한 티켓팅)’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시즌 최초로 1000만 관중을 돌파하는 등 프로야구 직관 열기가 뜨거워지자, 구단들은 유료 회원에게 예매 우선권을 주는 ‘선예매’에 이어 차등에 차등까지 혜택을 주는 ‘선선선예매권’을 내놨다.

23일 KBO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틀간 전국 5개 구장에서 열린 개막 2연전 표는 전석 매진됐다. 이틀 동안 10개 경기가 진행됐는데, 입장한 총 관중 수는 21만 9900명에 달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 개막 2연전(총 21만 4324명)을 뛰어넘는 기록이다. 24~30일에 예정된 주요 경기 표도 대부분 매진됐다.

지난해 10월 대구경찰청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인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 경기가 열리는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일대에서 암표 거래 등 불법행위 단속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대구경찰청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인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 경기가 열리는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일대에서 암표 거래 등 불법행위 단속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구단들은 2010년대부터 VIP 회원권을 판매해 30분~1시간, 또는 며칠 먼저 예매할 수 있는 우선권 멤버십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국내 프로야구 10개 구단 모두 ‘선예매권’을 주는 유료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다. 프로야구 인기가 높아지면서 KIA 타이거즈 등 5곳은 이보다 비싼 회원제 혜택인 ‘선선예매’를 도입했고, 삼성 라이온즈·KT 위즈 등 2곳은 ‘선선선예매’ 제도도 도입했다. 가입 시 내는 비용에 따라 순차적으로 예매 우선권을 얻을 수 있다. LG 트윈스는 올해 초 표 선예매를 혜택으로 하는 회원권 가격을 2만원에서 10만원으로 5배 인상했다.

일부 구단의 경우 경기장 좌석 수보다 멤버십 가입자 수가 더 많아 최대 100%까지 선예매자만 구매할 수 있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일반 야구팬 사이에선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화 이글스 팬인 최범규(27)씨는 “적자를 보는 야구단 운영 구조상 선예매권 판매 자체는 이해가 되지만, 일반 팬이 좋은 자리에서 직관하는 가능성은 아예 사라진 상태”라고 토로했다. ‘선선선예매권’이 풀린 한 구단의 팬은 “나는 선예매가 가능한 등급 유료 회원인데도 우선 예매자들이 표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개막전 예매에 실패했다”고 했다. 프로야구 팬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카페 등에는 “돈 없으면 야구 표도 못 구하는 세상이 왔다”, “사실상 티켓값 4~5만원”, “‘집관(집에서 중계방송 시청)’ 아니면 양도·취소 표에 기대야 하는 게 말이 되냐” 같은 글이 다수 올라왔다.

팬들 불만이 커지자 차등 회원제 도입을 철회한 구단도 나왔다. 지난달 22일 SSG 랜더스는 가장 비싼 회원제 구매자에게 1시간 빠른 선예매 혜택 준다고 발표했다가 팬들 반발로 하루 만에 철회했다. SSG 랜더스 관계자는 “멤버십 회원에 대한 혜택을 고민하다가 내놓은 정책이었지만 팬들 의견을 반영해 바로 수정했다”며 “당분간은 추가 회원 혜택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구단들은 “팬들의 로열티를 강화하고 효율적인 티켓 예매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목적”이란 입장이다. 삼성 라이온즈 측은 “프리미엄 서비스에 대한 팬들의 요구를 반영해 시즌권 회원보다 상위 등급을 추가한 것”이라며 “선예매 가능한 등급의 회원 수를 조정해 일반 예매자의 예매 선택권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KIA 타이거즈 관계자도 “애초 차등 회원제 도입은 프로모션 성격이 강하다”며 “1인 2매 한도로 수량을 제한하는 등 팬들 고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23일 LG와 롯데가 맞붙은 잠실 경기의 암표가 '양도'라는 이름으로 정가의 10배 가격에 온라인에서 팔리고 있다. 사진 X 캡처

23일 LG와 롯데가 맞붙은 잠실 경기의 암표가 '양도'라는 이름으로 정가의 10배 가격에 온라인에서 팔리고 있다. 사진 X 캡처

 
입장권 품귀 현상이 계속되며 암표 거래도 팬들을 괴롭히고 있다. 온라인 티켓거래 사이트인 티켓베이·중고나라 등에선 개막전 경기의 표가 정가의 최대 10배 가격에 판매됐다. 22~23일 인천문학구장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두산 베어스 개막전 경기의 경우, 1층 테이블 좌석 기준 정가는 1장당 5만8000원이지만 14만원에 팔렸다. 1만3000원짜리 시야가 가장 먼 4층 좌석도 8만원에 ‘거래 완료’ 됐다고 올라왔다.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표 물량이 제한돼있지만 버젓이 ‘10연석 나란히 붙어있는 좌석’이라고 홍보하는 글도 있었다.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맞붙은 경기의 2만3000원짜리 좌석은 10배 상당의 웃돈이 붙어 23만원에 ‘양도’라는 이름으로 거래됐다.

팬들의 피해가 더 커지면서 일부 구단이 직접 나서 암표를 거래한 연간 회원의 자격을 박탈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불법 암표를 근절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선예매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불법 암표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열성팬이 웃돈을 얹어 볼 수밖에 없는 구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구단이 공정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