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초월한 작전…軍, 서해 작은 섬에서 남아공 조종사 유해 발굴 나선다

6.25전쟁에는 미국, 영국, 필리핀, 태국, 뉴질랜드, 호주, 남아공,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에티오피아, 터키, 그리스, 콜롬비아, 프랑스, 캐나다의 군대가 유엔군으로 참전했다. 26일 오전 전쟁기념관 추모비 복도에 국화 한 송이가 남겨져 있다. 추모비에는 전사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임현동 기자

6.25전쟁에는 미국, 영국, 필리핀, 태국, 뉴질랜드, 호주, 남아공,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에티오피아, 터키, 그리스, 콜롬비아, 프랑스, 캐나다의 군대가 유엔군으로 참전했다. 26일 오전 전쟁기념관 추모비 복도에 국화 한 송이가 남겨져 있다. 추모비에는 전사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임현동 기자

군 당국이 인구 100여명의 서해 작은 섬 고파도에서 6·25 전쟁에 참전했다 실종된 유엔군 조종사의 유해 발굴 작전에 돌입한다. 한 주민의 제보를 단서로 무려 70년의 세월을 초월한 유해 발굴 작전이 이뤄지게 됐다.

24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에 따르면 국유단은 이날부터 내달 11일까지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고파도에서 6·25전쟁에 참전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유엔군 조종사에 대한 유해 발굴 작전을 전개한다. 이근원 국유단장은 “인종, 언어, 문화 모든 게 다른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지키러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웅들의 유해를 찾는 게 우리의 소명”이라며 “유해 발굴을 통해 과거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 작전은 작은 단서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5월 충청남도 일대의 유해 소재 조사 과정에서 한 80대 주민이 “과거 고파도에서 살았는데, 어렸을 때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들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다섯 달 뒤 국유단 조사팀이 고파도로 직접 들어가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고파도는 전체 주민 102명(70세대·올해 기준)의 작디 작은 섬. 이곳 주민들은 국유단 측에 '그 옛날 조종사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놨다. “미군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70년대 해수욕장에서 낙하산을 발견해 이불을 만들었다”, “어장 양식을 위한 작업 중 비행기 잔해 같은 금속 조각을 봤다”, “유해를 모래사장 일대에 매장했다고 들었다”, “다리 뼈를 봤다” 등 구체적인 단서들이 모였다.

주민들이 유해를 목격했다는 고파도 모래사장의 전경. 사진 국방부 유해발굴단 제공.

주민들이 유해를 목격했다는 고파도 모래사장의 전경. 사진 국방부 유해발굴단 제공.

 
이후 국유단은 신뢰성 검증을 위해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 자료 회신을 요청했다. 그 결과 주민들의 증언은 사실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6·25전쟁에 참전했던 남아공 공군(S.A.A.F) 소속 전투기 조종사 A가 이 부근에서 실종됐기 때문이다.  


DPAA 기록에 따르면 1953년 8월 28일 남아공 공군 제2전투비행대대(미 제18전투비행전대 배속) 조종사 A는 당시 미 측 전투기였던 노스아메리칸 F-86 세이버에 탑승해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 정전 협정(1953년 7월 27일)이 체결된 상태였지만, 파병 유엔군은 여전히 남아서 경계 임무와 훈련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조종사 A는 충남 태안군 서산 앞바다 상공에서 임무를 벌이던 중 전투기 대체 시스템과 비상 시스템 게이지 문제가 발생, 낙하산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종됐다. 당시 이틀에 걸친 집중 수색에도 그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주민들이 유해를 목격했다는 고파도 모래사장의 전경. 사진 국방부 유해발굴단 제공.

주민들이 유해를 목격했다는 고파도 모래사장의 전경. 사진 국방부 유해발굴단 제공.

국유단은 이처럼 주민 탐문 결과와 미 DPAA 기록, 당시 해류의 흐름과 바람의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고파도 내 유해 발굴 가능성이 큰 지점 세 곳을 특정했다. 마을 주민이 유해를 목격했다고 증언한 모래 사장과 모래사장 후사면, 인근 야산 등에서 유해 발굴을 시도할 예정이다.

국유단의 이 단장은 지난달 12일 주한 남아공 대사를 만나 고파도 유해 발굴 추진 계획을 설명하는 한편 신원 확인을 위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에 대한 협력도 요청했다. 현재 한국 전쟁에 참전한 남아공 실종자 24명 가운데 9명의 유가족 유전자 시료만 확보된 상태다.

국유단에 따르면 남아공은 1950년 9월부터 53년 10월까지 6.25 전쟁에 연 인원 826명을 파병했다. 주로 제2전투비행대대 소속으로, 전투기 총 115대를 동원해 총 1만 2405회 출격했다. 이들은 경기도 오산 비행장과 경기도 수원, 서울 여의도, 평양, 부산시 수영구, 경상남도 진해, 강원도 횡성 등 최전방 기지 곳곳에 배치돼 주요 작전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37명이 산화하고 8명이 포로로 붙잡혔으며, 24명은 실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