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탄핵때 건보개혁…연금개혁도 尹선고 앞두고 풀렸다, 왜

우원식 국회의장(가운데)과 국민의힘 권성동(왼쪽),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금개혁 관련 여야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우원식 국회의장(가운데)과 국민의힘 권성동(왼쪽),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금개혁 관련 여야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18년 만의 연금개혁안이 이르면 다음 달 1일 국무회의를 통과해서 공포될 전망이다. 법안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지난 20일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사실상 마무리된다. 남은 절차는 관보 게재이다. 공포하는 절차이다. 국무회의 통과 일주일 이내에 게재된다. 관보는 정부가 일반에게 널리 알릴 사항을 실어 발행하는 기관지를 말한다.

이번 개혁은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건강보험 개혁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 건강보험 개혁이, 이번에는 연금개혁이 마무리됐다. 건보·연금을 사회보험이라고 하는데, 대통령 탄핵 시기에 사회보험 개혁이 이뤄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회보험은 국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회 여건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고쳐나가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덕을 보는 사람은 말이 없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강하게 반대한다. 여기에 정치적 고려가 들어가면 일이 매우 복잡해진다. 그러는 사이에 개혁은 계속 미뤄진다.

연금개혁은 2007년 2차 개혁 이후 물밑에 들어가 있다가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후 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손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2년 대선 후보 토론 때 안철수 후보의 제안에 떠밀려 마지못해 동의했다. 2023년 제5차 재정재계산(개혁 주기를 말함)을 그냥 지나갔다. 당시 윤 대통령은 "총선 후에 하자"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총선에 참패했다. 그러자 국회 연금특위가 나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토론에 부치는 등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거의 합의 직전까지 갔으나 윤 대통령이 "구조개혁이 먼저"라고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뒤늦게 단일 개혁안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대통령실의 의지가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모수개혁(보험료·소득대체율 조정)을 들고 나오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됐다. 여당은 "이 대표의 대선행에 꽃길을 깔아줄 필요가 있느냐"고 견제했다. 소득대체율 1%p를 두고 지루할 정도로 줄다리기했다. 그러나 "하루 885억원의 적자가 쌓인다"는 여론의 압박이 거세졌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가 결심했고, 극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만약 지금의 탄핵 정국이 아니었으면 '구조개혁 먼저' 주장이 되풀이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여야 합의 과정에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그는 "대통령실이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고 부처에 맡겨두면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 

2017년 초 건강보험 개혁도 정말 힘들게 성공했다.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 시행 후 사실상 처음으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체계를 크게 뜯어고쳤다. 재산 건보료 부담을 낮추고 소득 중심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임대·금융 등의 별도 소득이 있는 직장인의 부담을 높였다. 또 직장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강화해 26만여명을 탈락시켰다. 

당시 청와대가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A씨는 "청와대에서 보험료 올라가는 사람의 반발을 걱정해 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진도를 내지 못했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했다"고 회고한다. 다른 관계자 B씨는 "탄핵 선고가 나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청와대를 빼고 가기로 결정하고 진도를 냈다"고 말한다. 

A씨는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던 권성동 위원장(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국민 부담을 줄여줘서 국민을 대표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인사말을 건넸다"고 회고했다. 

건보법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 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여당인 자유한국당이 반대하지 않았다. 

건보 개혁은 그때까지 2년 넘게 표류했다. 부담이 늘어나는 가입자의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핵이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면서 28년 만에 형평성을 크게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