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최진석이 진단한 2025 한국

철학자 최진석은 "이대로 가면 한국은 멸종한다"고 일갈했다. 장진영 기자
"이 나라는 털끝 하나라도 썩지 않은 곳이 없다.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이 혼돈이 그칠 것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남긴 말이다. 철학자 최진석은 지난 1일 중앙일보와 만나 2025년의 한국이 다산의 시대와 판박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 나라 안에선 진영 싸움에 빠져있는데 나라 밖에선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당파 싸움에 빠져 산업혁명의 흐름을 놓친 조선과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산의 말 이후 실제 조선은 망했다"며 "망국으로 갈 것인가 아닌가의 기회는 지금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가 말한 '지금'은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전후다. 4일 선고가 한국 역사에 어떤 이정표로 남을 거라고 예상하나.
"이렇게 되묻고 싶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이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기각이 우리 역사에 어떤 이정표가 되었는가. 잘 모르겠다. 우리가 가진 실력의 한계 때문이다. 그저 이번 선고가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기본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 기일을 이틀 앞둔 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도로 통행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선고 이후 정국도 안갯속이다. 정계에 당부하고픈 바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어떤 판결이 나도 승복하는 것이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피워낼 수는 없다. 승복이 중요하다."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의 흥망은 필부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의 분열과 반복의 정치 환경도 국민 자기 자신이 만든 것이며, 그렇기에 자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은 중국 명나라 말기 사상가 고염무(顧炎武)가 남긴 말이다. 그는 "나라를 보전하는 일은 왕후장상(王侯將相)들의 일이지만, 천하를 보전하는 일은 미천한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최 작가는 "우리 정치는 언제나 제대로 됩니까라는 질문이 중요해보이지만, 사실 그건 질문도 아니다"라고 했다. 왜일까. 그는 "정치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그 묻는 사람이기에, 남에게 답을 구할 게 아니라 자문자답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삿대질하는 여야 의원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왼쪽)가 헌법재판소 재판관 마은혁 임명 촉구 결의안 찬반 토론 중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의 공산주의자 발언을 하자 박형수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와 의원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21년 냈던『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후 4년이 지났다. 그간 대한민국의 변화를 진단해달라.
"이렇게 답하고 싶다. 어느 나라가 있다고 치자. 그 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으며, 최근 20년 동안 5명의 대통령 가운데 3명이 탄핵 심판을 받고, 탄핵 심판을 받지 않은 1명은 감옥에 갔다. 그 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떤 수준의 나라로 그려지는가. 그게 우리나라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리더십의 붕괴는 나라의 붕괴 조짐이다. 한국의 발전 추세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정점을 찍었고 그 뒤론 리더십의 혼란 속에서 혁신은 사라진, 대세의 하락 국면이 계속고 있다. 점점 더 추락해간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현 문제는.
"후진국으로 출발해 추격국가로 성장해온 한국은 지금 '사유의 종속성'에 함몰됐다. 추격국가의 사유 방식에 종속되어서는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추격국가로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에 우리는 이미 도달해버렸다. 작은 물고기인 '곤(鯤)'이 하루에 구만리를 날아가는 대붕(大鵬)이 되려면 온갖 풍파와 회오리를 이겨내고 더 높고 먼 곳으로 성장하며 건너가야 한다. 한국은 이대로 가면 다시 작은 물고기로 퇴락한다."

노자와 장자를 평생 연구해온 철학자 최진석. 장진영 기자
한국만 혼란인 게 아니라 세계가 다 그렇지 않나.
"혼돈의 종류가 다르다. 미국의 정치 혼란의 원점은 무엇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데 대한 의견의 차이로 비롯한 것이다. 메시지가 있다. 정치가 소란스럽다고 해서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편적이다. 우리는 민주화 산업화의 꿈을 이룬뒤 꿈을 잃었다. 각 꿈의 주역이 오히려 기득권을 갖게 됐고 그걸 놓지 않으려 한다. 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 줄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건너가야 하는 존재다. 삶의 목적은 '생존의 질과 양이 증가'이고, 다음 단계로 꿈과 야망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지금 한국은 그런 투지가 없다."
노벨문학상도 타고 BTS도 배출한 한국 아닌가.
"한때 세계를 휩쓸었던 홍콩 영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라. 지금 이 상태가 계속되면 10년 후, 노벨문학상도 다 과거의 영광일뿐이다. 지금 우린 관념적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세계를 보지 못한다. 세계를 보지 않으면 기술이 뒤쳐지고, 산업이 뒤쳐지고, 경제에 이어 국력이 쇠락한다. 현재의 성공에 취해 감성에 젖은 사람들은 그것이 영원할 거라 착각한다. 지성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복(福) 속에 화(禍)가 있고, 화 속에 복이 있음을,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안다."

철학자 최진석은 지금 한국이 다산 정약용(위 초상화)의 조선과 같다고 했다. 중앙포토
어떻게 해야 하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린 그간 성장의 단계를 너무 빨리 거쳐왔다. 자연 생태계에서도 진화의 한계에 다다르면 더 발전하지 못하고 '상호 모방'을 하다가 새 포식자가 나타나면 멸종한다. 한쪽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나쁘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장 나쁘다고 하는 것을 보라. 주어를 가리고 보면 어느 쪽이 한 말인지 잘 모를 정도의 상호 모방 단계에 있는 게 현재 대한민국이다."
구체적 해결책을 말해달라.
"'뭘 해야 하나'를 남에게 구하지 말고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답을 받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 찾으라. 자신에게 묻지 않기 때문에 자기 삶도, 자기의 나라도 남일 보듯 제3자처럼 대하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는 게 내 일 아닌 것, 그렇기에 방관하게 되는 것이다. 자문자답을 해서 장자가 얘기한 자쾌(自快, 스스로 자유롭고 충만한 상태)로 가는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 그렇기에 『삶의 실력, 장자』(위즈덤하우스)라는 책도 철학 공부 29년만인 지금 펴냈다.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아 지혜로 가는 다리를 스스로 건설해야 한다. 자기자신을 궁금해 해야 한다. 모든 위대함은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한다."

나라가 이 지경인데 나를 궁금해 하라니, 한가한 것 아닌가.
"그렇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만큼 가장 어렵고도 의미있는 일은 없다. 지금 우리의 정치 갈등의 원인은 뭔가. 개인이 스스로를 잃고, 특정 집단에 빠져 그 집단만의 진리, 그 집단만의 정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생각하는 능력을 개인이 잃어버렸다. 자기가 궁금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의 행동을 결정하고 책임지지 않는다. 일정 이데올로기가 주입되고 거기에 종속된다.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생각한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인간 취급도 하지 않다. 각박을 넘어 잔인의 단계다. 장자는 '오상아(吾喪我)', 즉 '내가 나 스스로를 장례 지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나와 작별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한국은 다윈 식으로 말하면, 멸종한다. 자유와 풍요의 시간으로 가는 마지막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각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