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韓 장애 이주민, 이중차별"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 첫 보고

지난달 16일 서울역에서 2025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서울역에서 2025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2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UN CERD)에 장애를 가진 이주민에 대한 차별철폐 권고를 요청하는 시민사회 보고서가 제출된 것으로 2일 파악됐다. 한국이 CERD에 ‘장애이주민’을 주제로 한 독립 보고서(주제별 대안 보고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65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CERD는 현재 179개국이 가입해 있는 국제 조약이다. 한국은 1978년 가입했다. CERD는 인종차별뿐 아니라 이주민, 난민 등을 위한 인권 기준을 제시한다. CERD는 한국에서 정부 보고서, 국가인권위원회 독립보고서, 시민사회 공동·독립보고서를 제출받아 협약 준수 여부를 점검·평가하고 최종 권고한다.

공익법단체 두루·이주와인권연구소·장애이주민지원네트워크 등 18개 단체가 참여한 ‘대한민국 시민사회 보고서’는 지난달 31일 CERD 위원회에 세 가지 권고를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①장애인 등록 제도에서 국적 및 체류자격에 따른 제한을 철폐하고 장애 여부와 복지 필요성을 기준으로 장애인 등록을 허용할 것 ②등록된 장애이주민의 복지서비스 이용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제한이 필요한 경우 최소한으로 할 것 ③등록되지 않은 장애이주민을 포함한 공적 통계 및 실태조사를 할 것 등이다.

지난달 16일 서울역에서 2025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서울역에서 2025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보고서는 한국의 장애이주민이 ‘이중의 차별’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은 국적과 체류자격을 기준으로 장애인 등록을 제한하고 있는 데다 등록된 장애인도 각종 복지 지원에서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으로 등록이 가능한 외국인을 재외동포, 재외국민, 영주권자, 결혼이민자, 난민 인정자로 한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유학생, 난민신청자, 주재원, 동반 가족 등은 장애인 등록이 불가능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등록된 장애이주민은 7805명으로 집계됐다. 그중 276명은 17세 미만 아동이었다. 보고서는 “등록되지 않은 장애이주민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며 존재 자체가 가시화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정책 수립과 예산 배분 과정에서 (제도 밖 장애이주민의) 권리와 필요가 지속해서 배제되는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연합뉴스

 
보고서는 등록된 장애이주민조차 충분한 복지를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주권자(F-5)라도 해도 장애인 의료비 지원, 장애아 보육료 지원, 장애수당, 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 등 복지 사업의 대상이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주권을 보유한 한 이주민은 당뇨 합병증으로 장애를 가진 4세 자녀의 재활 치료와 신경 치료에 매년 연 소득 4000만원 중 2500만원을 지출하고 있지만 어떤 공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권영실 변호사(재단법인 동천)는 “주요 선진국에선 장애인등록제를 택하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며 “개별 장애인의 장애 정도와 필요에 따라 복지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보고서 핵심 내용 삭제 논란 

한편, 최근 심의를 마친 국가인권위원회의 CERD 독립보고서는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일부 위원의 반대로 기존 안의 핵심 내용이 삭제·축소됐기 때문이다. 기존 안에는 성년이 된 이주아동체류권 보장,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불법체류 외국인 용어 철폐 등 내용이 담겼다. CERD대응시민사회모임은 지난달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가 독립적인 인권 보호 기구로서의 책무를 저버리고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