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가자지구 중부 알 마가지 난민캠프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구급차 정비소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점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은 그동안 전조등이나 비상 신호 없이 수상하게 접근하는 차량에 발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개된 영상에는 이와는 정반대의 장면이 담겨 있어 전쟁범죄 비판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에서 지난달 23일 새벽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망한 구호 요원의 휴대전화에서 확보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NYT는 유엔의 한 고위 외교관을 통해 입수한 이 영상에는 이스라엘군이 구급차와 소방차에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던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달리는 차량의 앞좌석에서 촬영된 이 영상은 구급차와 소방차들이 비상등과 전조등을 켠 채 달리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들 차량은 도로 왼편에 정차한 구급차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해당 구급차는 부상자를 구조하기 위해 먼저 출동했으나 공격을 받은 상태였다.
차량에 타고 있던 구호 요원들이 구급차에 탄 사람들의 안부를 염려하며 차에서 내리는 순간, 갑작스럽게 총격이 가해졌다.
카메라는 흔들리며 화면이 꺼졌지만, 오디오는 약 5분간 더 녹음됐으며 그동안 총성은 멈추지 않았다.
이 밖에도 이 영상에는 한 남성이 아랍어로 이스라엘군이 있다고 알렸고, 구호 요원이 죽기 직전 샤하다(이슬람 신앙 고백)를 반복하는 소리와 군인들이 히브리어로 명령하는 소리가 담겼다.
네발 파르사크 적신월사 대변인은 해당 영상을 촬영한 구호 요원이 집단 매장지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구급차를 무작위로 공격한 것이 아니라 자국군을 향해 비상등 없이 접근하는 수상한 차량들에 발포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특히 사망자 15명 중 9명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소속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NYT가 공개한 영상에서는 구급차와 소방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있었고, 구호 요원 차량임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선명하게 표시돼 있어 국제사회의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총재 유니스 알 카팁 박사는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과 법의학적 증거들이 이스라엘의 주장과 배치된다고 강조했다.
카팁 박사는 "피해자들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표적이 됐다"며 이스라엘이 이들을 살해하고도 며칠 동안 행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유엔과 적신월사는 구호 차량이 공격받은 지 닷새가 지나서야 이스라엘군과 협상을 통해 실종자 수색에 나설 수 있었다.
카팁 박사는 적신월사 요원 한 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이며 이스라엘이 그가 구금 중인지 혹은 사망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가 현장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사건 이틀 뒤 구급차와 소방차가 땅에 매몰돼 있었고, 인근에서는 이스라엘군의 불도저와 굴착기가 포착됐다.
적신월사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NYT가 확보한 영상을 유엔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딜런 윈더 유엔 주재 국제 적십자사와 적신월사 연맹 대표는 이번 사건이 2017년 이후 적십자사 및 적신월사 직원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라고 말했다.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번 사건이 "이스라엘군의 전쟁범죄 행위에 대한 추가적인 우려를 제기한다"며 독립적인 조사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