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에 기업 러브콜까지…'기부계의 삼성'된 중고매장 비결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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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회사는 정의로울까? 과거 기업의 평가 기준은 숫자였습니다. 요즘은 환경(Environmental)에 대한 책임, 사회(Social)적 영향,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 등 이른바 ‘ESG 관점’에서 기업을 판단합니다. 비크닉은 성장과 생존을 위해 ESG에 애쓰는 기업과 브랜드를 조명합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은 잠시 잊어주세요. 착한 일은 널리 알리는 게 미덕인 시대니까요.
지난달 27일, 우리은행 서울 소공동지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코너가 달라졌습니다. 모양은 ATM과 매우 유사한 기부함이 들어선 겁니다. 은행은 의류·잡화·도서·가전 등을 기부 받아 재판매 하는 ‘굿윌스토어’와 손잡고 이색 기부함을 선보였다고 해요. 일단 20여 개 지점에서 시범 운영되다가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인데다, 15개 우리금융그룹 계열사가 출자한 우리금융미래재단에서는 10년간 굿윌스토어에 300억원을 후원하며 100개 매장 건립비용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은행 ATM 자리에 들어선 굿윌스토어 기부함. 서혜빈 기자

우리은행 ATM 자리에 들어선 굿윌스토어 기부함. 서혜빈 기자

이쯤이면 굿윌스토어가 뭐길래 싶은데, 정체는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중고매장입니다. 친환경 바람을 타고 중고매장이 늘어난 요즘, 굿윌스토어에는 유독 기업의 협력이 잇따르고 있어요. 오뚜기는 매년 굿윌스토어에 물품을 지원하고, 물류창고 장소를 제공합니다. CJ도 연간 60억원 규모의 식품을 후원하고 있죠. 현대엔지니어링·이마트에브리데이 등 사기업부터 인천국제공항공사·한국가스공사 등 공공기관까지 여러 기업이 나서 매장 건립비용을 지원했고요. 이렇게 수많은 기업이 굿윌스토어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비크닉에서는 굿윌스토어가 기업 사이에서 매력적인 사회공헌 파트너가 된 이유를 알아볼게요.

123년 역사…장애인직업재활시설로 한국형 모델 탄생

1902년 미국 보스턴에서 시작된 굿윌스토어는 부유한 동네에서 물건을 기증받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팔았습니다. 구매 기회를 줘서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서였죠. 굿윌 운동은 미국 전역에 퍼져 현재 북미 지역에만 3300여 개 매장이 있습니다. 이후 전 세계 14개국으로 확산했고, 한국에도 2011년 첫 매장이 들어섰죠.

굿윌스토어 대구 밀알반야월점 모습. 밀알복지재단

굿윌스토어 대구 밀알반야월점 모습. 밀알복지재단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한국 굿윌스토어만의 특징은 발달 장애인 고용입니다. 전체 직원 751명 중 60%(451명)가 발달 장애인이죠. 처음엔 생산성 저하 우려로 반대가 컸다고 해요. 심지어 미국 굿윌 본사조차도 부정적으로 바라봤죠. 하지만 굿윌스토어는 지속해서 성장했습니다. 2022년엔 매출 160억원을 내더니 2023년엔 240억원, 지난해엔 350억원 매출을 올렸죠. 매년 100억원 규모의 성장을 끌어낸 겁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무려 12%를 기록했고요. 주요 상권에 있는 것도 아닌데 전국 36개 매장 중 적자를 내는 매장은 단 한 군데도 없다고 해요.

쿠팡처럼 유통 혁신…중고 프랜차이즈 매장 구축

장애인 직업 재활 훈련과 고용, 그리고 기증품 중고 판매까지, 매출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곳의 성장 비결은 단순히 기업이나 정부 후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합 프랜차이즈 매장으로서의 비즈니스 모델을 제대로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물류창고에서 근무 중인 굿윌스토어 직원들. 밀알복지재단

물류창고에서 근무 중인 굿윌스토어 직원들. 밀알복지재단

한상욱 굿윌스토어 부문장은 굿윌스토어의 핵심이 ‘유통’에 있다고 봤습니다. 전국에서 한 해 약 3000만 점의 의류와 수십억 규모의 식품을 기증받는데,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30년간 이랜드 등 패션 유통업에 종사한 한 부문장은 “많은 물량을 기증받고, 가치 있게 상품화하는 건 유통의 혁신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굿윌스토어가 기증받은 물건의 50%는 서울 용답동·인천·경기 시흥에 있는 통합 물류 센터에 모입니다. 대구에 새 물류 센터도 열 계획이고요. 쿠팡이 전국에 통합 물류 센터를 두고 유통 효율화를 이룬 것처럼, 굿윌스토어 역시 유통 비용을 줄이려는 전략입니다.

매일 250명이 구매하는 꼴…보물찾기하는 소비자

중고매장임에도 질 좋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 굿윌스토어에 방문하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굿윌스토어에서 물건을 구매한 사람은 약 270만명입니다. 전국 모든 매장에 매일 250명이 상품을 구매하는 꼴이죠.  

실제로 지난달 28일 방문한 서울 회현동 굿윌스토어 매장엔 평일 오후 시간대인데도 20명 넘는 사람들이 쇼핑하고 있었습니다. 1000원짜리 여성 속옷부터 즉석밥 3개에 1000원, 5000원짜리 샴푸 등 매장엔 의류 브랜드의 재고 상품부터 간편식 등 식품까지 다양한 상품이 저렴하게 팔리고 있었죠. 의류·식품·생활용품이 전체 매출의 각각 40·25·23%를 차지하는데, 소비자가 굿윌스토어를 종합 할인마트처럼 이용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굿윌스토어 밀알우리금융점 내부 모습. 서혜빈 기자

굿윌스토어 밀알우리금융점 내부 모습. 서혜빈 기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굿윌스토어를 ‘보물찾기’라 표현합니다. 기증품을 판매하는 굿윌스토어엔 언제 어떤 물건이 들어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매장 오픈 20~30분 전부터 대기 줄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여러 굿윌스토어 매장을 돌면서 쇼핑하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굿윌스토어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재미 요소인 거죠.

착하다고 자선에 기대선 안 돼…자생력 키우는 BM이 필수

결국 많은 기업이 굿윌스토어에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자선에만 기대지 않고, 자생력을 키우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덕분입니다.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상품을 팔고, 유통 혁신으로 비용을 최소화해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죠. 여기에 발달 장애인 고용과 환경보호 가치를 추구하면서 가치소비 문화를 만드는 점도 굿윌스토어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요.

우리금융그룹의 사회공헌 페스티벌 '2024 우리모모콘'에 굿윌스토어 팝업스토어가 들어섰다. 우리금융미래재단

우리금융그룹의 사회공헌 페스티벌 '2024 우리모모콘'에 굿윌스토어 팝업스토어가 들어섰다. 우리금융미래재단

김병진 우리금융미래재단 사무국 담당자는 “사회공헌 사업을 하면 보통 시혜성에 기대는 곳이 많은데 굿윌스토어는 유통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고, 장애인 고용 가치까지 만들어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9월 한국에 방문한 스티븐 프레스턴 미국 굿윌스토어 대표이사는 임종룡 우리금융미래재단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발달 장애인 일자리 창출 모델을 만든 두 재단의 협력 방식은 굿윌 글로벌 네트워크에도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도 했죠.

굿윌스토어의 목표는 10년 안에 100호점을 내는 것입니다. 매장을 늘릴 때마다 더 많은 발달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굿윌스토어가 100호점을 열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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