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부정'에 동원된 국민저항권…헌법학자들 "혹세무민"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파면 결정이 내려진 4일 대전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헌재는 이날 오전 대심판정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사건 선고 재판에서 재판관 8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윤 대통령 탄핵심판청구를 인용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 파면 결정이 내려진 4일 대전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헌재는 이날 오전 대심판정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사건 선고 재판에서 재판관 8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윤 대통령 탄핵심판청구를 인용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지난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뒤에도 일부 지지자들이 국민저항권을 근거로 들며 탄핵을 부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수의 헌법학자는 “국민저항권 개념을 임의로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 이틀 뒤인 지난 6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서울 광화문에서 연 주일 예배 집회에서 “국민저항권을 발동해 헌법재판소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윤 전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했던 이들도 재판에서 국민저항권을 근거로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헌법학자들은 이는 국민저항권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민저항권이란 국민이 민주 질서를 해치는 공권력에 대항할 최후의 수단으로서 주어지는 권리이지만,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요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저항권 자체는 자연법으로서 천부인권(모든 인간에게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기본적 권리)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게 학계 주류 견해다.

우리나라 헌법도 저항권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헌법 전문에서 저항권을 인정한다고 유추할 수 있는 문구가 담겨있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저항권 개념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은 물리적 충돌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에 적용 요건이 까다롭다. 1997년 헌법재판소는 저항권을 “국가권력에 의하여 ▶헌법의 기본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행하여지고 ▶그 침해가 헌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다른 합법적인 구제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에 국민이 자기의 권리·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실력으로 저항하는 권리”(97헌가4)라고 결정했다.


대표적인 예로 5·18 민주화운동이 꼽힌다. 박진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군부에 대항했던 5·18 민주화운동은 당시 제도 안에선 공권력을 막을 수 없는 특수한 시대에 벌어졌다”며 “저항권 행사가 정당화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 상황이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도수 전 헌법연구관 또한 “5·18 운동 당시 저항권 정신을 수용한 결과 5·18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김군'에 등장한 5.18 당시 기록 사진. 이창성 전 중앙일보 사진기자가 찍은 것으로, 그가 2008년 펴낸 사진집 『28년만의 약속』에도 실렸다. 사진 이창성

다큐멘터리 '김군'에 등장한 5.18 당시 기록 사진. 이창성 전 중앙일보 사진기자가 찍은 것으로, 그가 2008년 펴낸 사진집 『28년만의 약속』에도 실렸다. 사진 이창성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주장에 대해 헌법학자들은 “저항권이란 개념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한국 헌정 질서는 헌법의 정신과 목적대로 잘 작동하고 있다”며 “이번 탄핵 선고는 국회에서의 탄핵 소추, 헌재에서의 절차를 거쳐 내려진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탄핵 선고는 헌법과 법률로 정한 절차에 따라 내린 사법부의 결정”이라며 “국가 권력이 불법을 저질렀으니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정치인들까지 나서 저항권이란 말을 오남용한다”며 “헌정 질서를 존중해야 하는데 오히려 부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안타깝다”고 전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뉴스1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뉴스1

 
“헌법 위에 국민저항권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김종철 교수는 “이는 입헌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때 가능한 주장”이라며 “헌정 질서가 무너졌다는 억지 전제하에 국민을 혹세무민하려는 것”이라고 짚었다. 김대환 교수도 “프랑스 혁명 때부터 시작된 저항권은 물리적 힘과도 관련된 개념인데, 전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저항을 이야기하는 건 폭력을 부추기는 행동일 뿐”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