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월만즉휴(月滿則虧)와 조설근(曹雪芹)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등장인물을 통해 관심을 끄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짧은 분량의 시(詩)와 달리 소설은 필사를 통한 보급에 애를 먹곤 했다. 한 편에 꽤 많은 문자가 동원되기 때문이다. 과거, 인쇄술이 발전하기 이전에 소설이 유행하기 어려웠다.

조설근(曹雪芹). 바이두

조설근(曹雪芹). 바이두

 
조설근(曹雪芹. 1715~1763)의 대하소설 '홍루몽(紅樓夢)'은 요즘에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이 작품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소위 '홍학(紅學)'도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비교되곤 한다.

이번 사자성어는 월만즉휴(月滿則虧. 달 월, 찰 만, 곧 즉, 이지러질 휴)다. 앞 두 글자 '월만'은 '달 모양이 둥글게 되다'란 뜻이다. '즉'은 '~하면 곧'이고, '휴'는 '이지러지다, 여기서는 '둥근 보름달이 다시 초승달 모양으로 변해간다'란 뜻이다. 따라서 '월만즉휴'는 '달이 차면 기운다, 즉 무슨 일이든 성하면 반드시 쇠한다'란 의미다.

홍루몽(紅樓夢). 바이두

홍루몽(紅樓夢). 바이두

화가 겸 소설가 조설근은 난징(南京)의 넉넉한 한족(漢族) 가정에서 태어났다. 증조모가 강희제(康熙帝)의 유모를 지냈다. 이 인연으로 조부는 강희제 통치기에 황제에게 납품하는 견직물을 관장하는 강녕직조(江寧織造)를 지냈다. 옹정제(雍正帝)가 즉위하고, 조설근이 사춘기에 들어섰을 무렵 가문이 갑자기 몰락했다. 이후 조설근은 수도 베이징 교외로 이사해 성장했다.

이후 그는 평생 가난하게 생활하며 훗날 '홍루몽'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 80회 분량의 '석두기(石頭記)'를 창작한다. 그는 살아생전에 '석두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의 사후에 한 출판업자의 기획을 거쳐 작품이 다듬어지고 후반부도 완성됐다. 여기에 '홍루몽'이란 새로운 제목이 붙여졌다.


안타깝게도 조설근은 인기 작가 지위와 영광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다가 48세로 일찍 세상을 떴다.

120회에 달하는 대작 '홍루몽'은 중국 각지에서 크게 유행했다. 지식인 집안에는 대부분 한 질씩 꽂혀있을 정도였고, 많은 젊은이들이 삽화가 포함된 이 신선한 느낌의 소설을 애독했다.

'홍루몽'은 청춘 남녀의 사랑과 혼인이 큰 줄기다. 도표를 만들어 따로 정리해야 할 정도로 등장인물이 많다. '홍루몽'의 각 인물마다 실제 모델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설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허점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 이유다.

홍루몽 인물관계도. 바이두

홍루몽 인물관계도. 바이두

황제의 총애를 받는 귀족 가문이 세속의 온갖 영화를 누리다가 결국 몰락하는 것도 '홍루몽' 서사(敍事)의 한 축이다. 청나라 귀족 가문의 흥망성쇠가 빼곡히 묘사되어 있다. 세부 묘사가 사회학 자료에 가깝다.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등과 달리 세밀한 심리 묘사가 특히 돋보인다.

시야를 확장하면, 중국 근대화의 필연성을 예고하는 작품으로 읽히기도 한다. 자극적인 사건보다 세상사의 자연스러운 이치와 흐름에 의지하는 스토리 전개가 개연성 있게 다가온다.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이었던 조설근의 탁월한 작가적 역량 덕분에, 시공을 초월해 청나라 귀족 가정에 초대받은 느낌까지 든다.

이 작품을 읽으면, '월만즉휴' 이 네 글자가 떠오른다. '홍루몽' 한 등장인물의 대사에도 나온다. '월만즉휴'는 '물이 가득 차면 넘친다'는 '수만즉일(水滿則溢)'과 한 쌍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주역(周易) '풍(豊)' 괘의 '일중즉측(日中則昃), 월영즉식(月盈則食)'도 비슷한 쓰임이다.

TV, 영화, 인터넷 등으로 인해 '소설 읽기'가 쉽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뭘까?
리포트 제출, 작가의 문체를 음미하는 재미, 등장 인물의 심리 간접 체험 등 여러 동기가 혼재한다. 방황하는 청년기엔 심오한 지혜와 철학에 다가가는 한 경로로 여겨질 수도 있다.

'지혜란 우리가 그냥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도 대신 가줄 수 없는 여정을 거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 발견해야만 한다.' 내면 세계 탐험에 대해 한 작가는 이런 진솔한 문장을 남겼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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