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 변했네…이럴 수 있냐!" 이순자 분노한 '오물통' 발언

제2부. ‘5공 청산’과 전두환·노태우 갈등

 

2회. 이순자 심야 통화, 김옥숙 압박하다

 

1981년 이순자 여사가 만든 새세대육영회 총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순자 여사는 '좋은 일 한다'는 취지에서 육영회와 심장재단을 만들었지만 6공화국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5공 비리'로 지목됐다. 중앙포토

1981년 이순자 여사가 만든 새세대육영회 총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순자 여사는 '좋은 일 한다'는 취지에서 육영회와 심장재단을 만들었지만 6공화국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5공 비리'로 지목됐다. 중앙포토

국정감사 첫날 박철언 부른 이순자

 
1987년 개헌으로 16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가 1988년 10월 5일 처음 열렸다. 사실상 헌정 최초인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이 주도하는 국정감사는 ‘5공 청산’에 집중됐다. 그중에서도 영부인 이순자 여사가 만든 ‘새세대육영회’와 ‘새생명심장재단’ 거액 기부금이 먼저 터져나왔다. 전경환이 이미 총선 전 구속된 상황에서 이순자는 두 번째 ‘친인척 비리’의 타깃이었다.  

이순자 여사가 이날 오후 박철언 청와대보좌관을 연희동 집으로 불렀다. 일제시대 만주에서 태어난 이순자는 아버지 이규동이 태어난 경북 성주를 고향으로 생각했다. 박철언이 성주 출신이다. 5공 시절 이순자는 청와대 비서관 박철언을 고향 후배라며 챙겼다. 이순자는 6공의 황태자가 된 박철언에게 2시간45분간 호소했다.  

이순자는 먼저 ‘10월 14일 새세대육영회 총회를 열어 회장직에서 사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니 명예롭게 물러나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야당도 야당이지만, 노태우 정부 관련 기관(문교부, 시교육위원회, 검찰 등)의 감사와 수사 등 압력을 막아달란 얘기다.  


이순자 여사는 말미에 ‘6·29는 우리 각하(전두환)의 지침이었다’고 말했다. 노태우 정권 탄생의 동력인 6·29 민주화 선언이 ‘노태우의 고뇌에 찬 결단’이 아니라 ‘전두환의 지시에 따른 연기’라는 사실을 환기시킨 것이다. ‘여차하면 이를 폭로할 수 있다’는 경고나 마찬가지였다.

이순자 여사가 격한 감정을 감추지 않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순자는 자신이 해 온 일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육영회는 어린이 교육을 돕는 일이고, 심장재단은 심장병 어린이를 치료해 주는 조직이니 ‘당연히 좋은 일 아니냐’는 생각이다. 

물론 좋은 취지의 일이다. 문제는 돈이다. 절대권력자의 부인이 사업을 벌이니 기업인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오게 마련이다. 말은 ‘자발적 헌금’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준조세나 마찬가지며, 나아가 정경유착의 고리로 작용하기 마련이었다. 전두환의 일해재단, 이규동의 노인회, 전경환의 새마을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이순자, 김옥숙에게 ‘이럴 수 있냐’

 
이순자 여사는 14일 새세대육영회 임시 대의원총회에 참석해 회장직 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순자는 특히 정치권 주변에 나돌던 소문에 왈칵했다. ‘기금 조성 과정에서 거액을 치부해 호주와 미국에 땅과 주식을 사놓았다’는 의혹이었다.  

저는 전직 대통령 부인이니까 잘못이 있어도 눈 감아주자는 억지 논리와 구차한 비호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파헤치십시오. 철저하게 파헤치십시오.
 
회견문은 이순자가 직접 썼다. 이순자는 매일 몇 시간씩 신문을 정독했다. 여론의 반응과 정치권 움직임을 잘 알고 있었다. 글솜씨도 좋은 편이다. 회견을 끝내고 승용차에 오르려던 이순자에게 기자들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국회 출석할 겁니까?”
당시 국회에선 ‘5공 비리’와 관련해 이순자를 국정감사 혹은 5공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채택하는 논의가 한창이었다. 이순자가 시원하게 즉답했다.  

“출석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진실을 밝힐 테니 걱정 마십시오.”

이순자는 사진기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랐다. 이순자가 밝히겠다는 ‘진실’엔 6·29 진상이 포함돼 있었지만, 이를 알아들은 곳은 6공 청와대뿐이었다. 당장 야당에서 ‘반성의 빛이 전혀 없다’ ‘아직도 5공인 줄 아냐’는 등 반발이 쏟아졌다.  

1991년 10월 2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모 빈소인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노태우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왼쪽)가 찾아왔다. 조문을 마치고 이순자 여사(오른쪽)의 안내를 받아 옆방으로 가고 있다. 악화된 두 사람의 관계가 표정에 드러난다. 중앙포토

1991년 10월 2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모 빈소인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노태우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왼쪽)가 찾아왔다. 조문을 마치고 이순자 여사(오른쪽)의 안내를 받아 옆방으로 가고 있다. 악화된 두 사람의 관계가 표정에 드러난다. 중앙포토

이날 밤 청와대 김옥숙 여사가 이순자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1시간 40분간 통화했다. 

(계속) 
 
"도와달라"


이순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읍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온 김옥숙의 대답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순자는 “우리가 이럴 사이가 아닌데 이럴 수 있느냐”며 "변해도 너무 변했다. 옛날의 김옥숙이 아니다"라며 분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퇴임 이후 연락이 없던 내실간의 통화에선 어떤 고성이 오간 것일까.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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