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전 4시 27분쯤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지하터널 붕괴 사고 현장에서 고립됐던 20대 굴착기 기사가 사고 발생 13시간여만에 구조되고 있다. 사진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지하 30m에서 요구조자(구조 대상자) 얼굴을 마주 보곤 울컥했다. ‘살 수 있다. 반드시 퇴근시켜드리겠다’고 말했다.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 현장에서 13시간 넘게 고립돼 있던 20대 굴착기 기사 A씨가 12일 오전 4시 27분쯤 구조됐다. 전날부터 잔해더미 아래서 밤샘 구조작업을 벌인 이준희(42) 경기도 특수대응단 소방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잘 버텨주셔서 감사하다. 우리가 만난 것이 참 다행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광명소방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16분쯤 요구조자 1명의 소리가 확인됐다. 하지만 무너져내린 도로에서 토사물이 계속 쏟아져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홍건표 광명소방서 화재예방과장은 오후 8시 현장 브리핑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중장비와 구조대 투입이 늦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11일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공사 붕괴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잔해더미 아래서 A씨가 발견된 건 오후 10시 16분쯤이다. 육성으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의식이 또렷했다고 한다. 이 소방장은 “뒤통수가 보일 때부터 ‘어떻게 구조해야 할까’라는 생각뿐이었다”며 “200㎏에 달하는 상판은 크레인으로 끄집어냈다. 삽과 호미로 흙을 파내고 전선을 자르면서 땅속으로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토사가 무너지면서 웅크린 자세로 고립됐던 A씨는 두 다리와 허리까지 흙 속에 파묻힌 상태였다. 구조 작업이 진행되면서 점차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소방장은 함께 내려간 조병주 소방위와 흙을 파내면서 A씨의 장화를 칼로 찢어 다리를 빼냈다. 압박이 갑자기 풀리면 쇼크가 올 수 있어서 A씨의 상태를 계속 확인했다. 담요를 덮어주고, 초콜릿 우유를 챙겨주면서 체온과 당이 떨어지지 않게 했다. 구급대원이 크레인을 타고 내려와 수액도 놓았다.

11일 오후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공사 붕괴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의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말도 걸었다. ‘이름이 뭐냐, 몇 살이냐, 친구 관계는 어떠냐’ 등을 계속 물어보면서 A씨에게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 이 소방장은 “(A씨가) 처음에는 ‘언제 가요? 언제 가요?’라고만 했는데, 짓누르던 게 하나씩 없어지자 ‘저 살 수 있는 거죠?’라고 물었다. 당연히 살아서 우리랑 나가자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마침내 이날 오전 4시 27분쯤 A씨는 크레인을 타고 잔해더미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외상이 크지 않아 목 보호대를 한 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자세한 검사를 받기 위해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된 상태다.
“젊은 청년이었다. 와줘서 고맙단 말에 힘 났다”

경기 용인 경기도소방재난본부 특수대응단에서 장비를 살피고 있는 이준희 소방장의 모습. 손성배 기자
이 소방장은 지난 2012년 입사해 지금까지 구조대원 일을 했다. 가평·용인소방서 등을 거쳤고, 경기도 소방학교(2015~2019년)에서 구조 기술 교관도 했다. 특수대응단에선 근무한 지는 4년 정도다. 2020년 38명이 사망한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창고 화재 때 생존자를 3명 구조했다. 지난해 6월 발생한 화성 아리셀 대형 화재와 올 2월 안성 고속도로 공사장 교량 붕괴사고에서도 구조 작업에 나섰다.
경험이 많은 그지만, 이번 현장은 “신경이 바싹 곤두설 정도”로 녹록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얼굴을 보게 된 젊은 20대 청년이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 말에 힘이 났다”며 “오랜 시간 고립돼 있던 분이 잘 구조돼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나중에는 웃으면서 대화도 했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경기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공사 현장이 붕괴돼 인근 도로가 통제되고 있다. 뉴스1
현장에서는 구조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아직 실종 상태인 포스코이앤씨 소속의 50대 노동자 1명을 찾기 위한 수색이다. 김태연 경기도 특수대응단장은 “전날부터 대원들이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며 “오후에는 비 소식이 있지만, 실종자 한 분도 꼭 무사히 구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는 광명시 일직동 양지사거리 부근 신안산선 복선전철 제5-2공구에서 포스코이앤씨가 시공 중인 지하터널 공사 현장과 상부 도로가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국토교통부는 사고 수습을 위한 사고대책본부를 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