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의 한 과수원에서 배꽃에 수술을 묻히는 인공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난자가 없는데 정자를 아무리 찍어본들 어쩌겠어요.
15일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의 한 과수원. 이미숙(54)씨는 하얗게 핀 배꽃에 꽃가루를 묻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배꽃을 자세히 보니 가운데 암술 부분이 마치 불에 탄 듯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갑작스러운 봄 추위에 꽃이 마치 동상에 걸린 것처럼 피해를 본 것이다. 이 씨는 “30년 넘게 배 농사를 지었는데 배꽃이 이렇게 많이 얼어 죽은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했다.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에 하얀 배꽃이 활짝 폈다. 천권필 기자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의 한 과수원에 핀 배꽃. 이상저온으로 인해 가운데 암술이 검게 변하는 고사 현상이 나타났다. 천권필 기자
“순식간에 여름서 겨울로 바뀌니 속수무책”

갑작스러운 저온 현상으로 배주(밑씨)가 검게 변했다. 오른쪽은 피해를 입지 않은 배꽃의 배주 모습. 천권필 기자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의 한 과수원에 핀 배꽃들. 이상저온으로 인해 가운데 암술이 검게 변했다. 천권필 기자
지난해 이어 올해도 기후 인플레이션 가능성

13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악화가 물가 인상으로 이어졌던 지난해의 악몽이 올해에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폭염과 폭우 등 기상이변의 여파로 과일과 채솟값이 폭등하면서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배 가격은 생산량이 크게 줄면서 전년보다 71.9%가량 뛰었고, 귤(46.2%)과 사과(30.2%)도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기후 전문가들은 특히 봄철 이상기후가 작황 부진으로 이어지면서 물가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난화로 인해 과일나무의 꽃피는 시기가 빨라지면서 저온에 쉽게 노출돼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과거에는 온난화로 개화 시기가 빨라지면 농작물 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봄 냉해 피해가 더 커지면서 오히려 생산성이 악화하고 있다”며 “농작물 생산량 감소는 밥상 물가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실화된 기후재난 피해 대책 시급”

9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만음리 한 사과 농장에서 작업자들이 개화를 앞둔 사과나무에 퇴비를 주고있다. 뉴시스
정 교수는 “탄소를 감축하기 위한 정책도 중요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이미 현실화 되는 농가 피해를 줄이고, 인플레이션에 대비하기 위한 기후 적응 대책이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