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악재? 호재 됐다…하이닉스, 1분기 영업익 7.4조 '역대 최대'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전경. 연합뉴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전경. 연합뉴스

SK하이닉스가 1분기 영업이익 7조원을 넘겨 시장 전망을 뛰어넘은 실적을 냈다. 걱정했던 관세 폭풍과 ‘딥시크 충격’이 도리어 호재로 작용했고, 고대역폭메모리(HBM)에 힘입어 영업이익률 42%를 기록했다.

24일 SK하이닉스는 지난 1분기에 매출 17조 6391억원에 영업이익 7조 4405억원을 올렸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42%, 영업이익은 158% 늘었다. 창사 이후 최대 실적이었던 직전 분기보다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1%, 8% 감소했으나 영업이익률은 1%p 더 높아졌다(41%→42%). D램과 낸드 메모리 출하량은 각각 10%, 20%가량씩 줄었으나,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과 DDR5가 여전히 잘 팔린 덕분이다.

관세 덕 본 1분기

당초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을 6조원 대로 전망했다. 1분기는 메모리 산업의 계절적 비수기인 데다가,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풍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였다. 

그러나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을 1조원가량 뛰어넘었다. 이날 실적발표 후 콘퍼런스 콜에서 김우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분기는 어려운 수요 환경이 예상되었으나, 중국의 소비자 제품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AI 개발 경쟁, 일부 재고 축적 수요가 맞물려 메모리 시장이 예상보다 빨리 개선됐다”라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관세 불확실성 때문에 미리 메모리를 사두려는 수요도 있었다. 김규현 D램 마케팅 담당은 “글로벌 고객들은 전반적으로 협의 중이던 메모리 수요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고객은 단기적으로 공급을 당겨 달라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반도체에 품목 관세를 매길 것을 예고했고, SK하이닉스의 미국 매출 비중은 60%에 달한다. 그러나 김 CFO는 “관세는 미국으로 선적되는 물량에 적용되는데, 미국에 본사를 둔 고객도 메모리 제품은 미국 외 지역에서 받는 경우가 많아 미국으로 직접 수출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라고 말했다.

딥시크, 메모리엔 ‘악재’ 아닌 ‘호재’

지난 15일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 저사양 그래픽처리장치(GPU)인 H20의 중국 수출을 제재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 HBM의 주 공급사인 SK하이닉스에 미칠 영향도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나 이날 김기태 HBM 세일즈&마케팅 담당은 “HBM 사업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올해 주요 고객사로 판매 계획은 기존 체결한 계약 수준에서 변동이 없다는 점”이라고 못박았다. 

김 담당은 또한 “올해 HBM 매출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하며, 2분기에는 HBM3E 12단 출하량이 전체 HBM3E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기존 계획에 변함 없다”라고 설명했다. HBM3E(5세대) 12단은 현존 최신·최고사양 HBM으로, SK하이닉스가 지난해 9월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했으며 엔비디아가 올 하반기 출시하는 차세대 AI 가속기 ‘블랙웰 울트라’에 탑재된다. 

SK하이닉스의 6세대 HBM4. 사진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의 6세대 HBM4. 사진 SK하이닉스

 
‘딥시크 모먼트’ 이후 메모리 전망도 나왔다. 지난 1월 중국 딥시크가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덜 쓰고도 성능 좋은 인공지능(AI) 추론 모델을 내놓자, GPU에 쓰이는 고가 메모리인 HBM 수요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김규현 D램 담당은 “딥시크의 등장으로 AI 개발 시장의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져, AI 개발 시도가 급격히 증가했다”며 “이 과정에서 HBM뿐 아니라 96기가바이트(GB) 제품 같은 고용량 서버 모듈(DIMM) 수요도 크게 늘었다”라고 말했다. AI 개발 비용이 저렴해지며 저변이 확대돼 메모리를 더 많이 찾게 됐다는 거다.

김기태 HBM 담당은 “글로벌 기업의 AI 인프라 투자 확대 기조가 유지되고 국가별 자체 AI 생태계 구축 노력도 증가하고 있어, HBM의 장기 수요 성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며 “2028년까지 HBM 수요가 연평균 50%씩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세대(6세대) HBM4에 대해서는 “내년 주력이 될 것”이라며 “HBM4 12단 제품의 양산 준비를 연내 마무리하겠다”라고 말했다. 

최근 시장조사기관의 D램 시장 점유율 조사에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이에 대해 “고수익 AI 메모리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짜면서 D램 기술 리더십을 인증한 결과”라며 “HBM은 고객 수요에 선제 대응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안정적으로 양산하며, 일반 D램은 수익성 중심의 제품 운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