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에서 소외된 미국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박탈감이 트럼프 불러내”
“트럼프는 저물가·저금리 원할 것…미국 다음 스텝 경제 논리로 예측해야”

기획재정부 제1차관 재임 시절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해본 김용범 전 차관은 “트럼프는 경제의 논리로 정책을 세운다는 점에서 예측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전 차관이 지난 4월 10일 중앙일보빌딩에서 월간중앙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월간중앙이 4월 10일 기획재정부 1차관(2019년 8월~2021년 3월 재임)시절, 트럼프 행정부 1기를 상대한 김용범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와 마주 앉은 이유다.
트럼프의 복귀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렇다(웃음). 그러나 이 상황을 트럼프 개인의 성향 탓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모든 것은 작용과 반작용이다.”
작용과 반작용은 무슨 뜻인가?
“양극화의 그림자와 방치된 중·하층민의 깊은 아픔이 트럼프를 다시 백악관으로 불러들였다는 의미다.”
양극화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전 세계를 부유하게 만든 세계화가 양극화를 촉진했다. 냉전 이후 반(反)서방 진영이 글로벌 교역 체계에 편입되며 경제성장이 가파르게 진행됐다. 체제 경쟁,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도 끝났다. 심지어 중국은 탈냉전 이전인 덩샤오핑 시절부터 미국과 경제적으로 교류했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을 인용하면 ‘세계가 평평해진 것’이다. 세계가 평평해지자 자본은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 흘러갔다. 자연스레 인력과 함께 말이다. 화룡점정은 2001년에 발생했다.”
“‘메이드 인 USA’ 부활 꿈꾸는 미국”
2001년에 어떤 일이 있었나?
“중국이라는 잠자던 거인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세계의 공장이 된 거다. 제조업이 중국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세계 교역이 부흥한 것이다. 우리나라 같은 교역 중심 국가에는 희소식이었다.”
그로 인한 미국의 명암도 뚜렷했다.
“우선 글로벌 시장이 급성장했다. 과거 NBA가 미국만의 농구였다면, 전 세계인의 농구가 됐다.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다. 반면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쇠락했다. 과거 1950년대 미국에서는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 좋은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GM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쇠락하지 않았는가?”
미국 부통령 J.D. 밴스가 쓴 〈힐빌리의 노래〉에서 나오는 미국의 러스트벨트(Rust Belt, 쇠락한 공업지대)가 그렇다.
“(자동차산업 중심의) 디트로이트와 철강 중심인 펜실베이니아주의 피츠버그가 대표적이다. 러스트벨트는 과거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당시 미군이 사용한 군함을 만들던 곳이다. 이후 지구가 평평해지면서 공장들이 중국과 동남아로 떠났다. 트럼프의 당선은 사실 이때부터 예고된 셈이다.”
미국 노동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과거 러스트벨트에서는 고등학교만 나와서 공장에 취업해도 중산층 이상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렵다. 기업과 개인의 동반성장이 어려워진 것이다.”
우리나라가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은 셈이 됐다.
“그렇다. 과거 GM이 해외에 공장을 세울 때만 해도 대한민국이 미국을 위협할 정도의 자동차 강국이 될 거라고 예상 못 했다. 이후 공장이 미국을 떠나자 러스트벨트를 비롯한 미국의 산업 도시들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이처럼 세계화의 이면에는 양극화가 자리한다. 오늘날 ‘트럼프’는 ‘양극화의 그늘’이다. 지난 2023년 실리콘밸리에 갔을 때 이를 절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행사를 열고 국가별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25% 상호관세를 산정했다. [로이터=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24/a4065a55-4c15-4a07-81b1-630baf111e94.jpg)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행사를 열고 국가별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25% 상호관세를 산정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등장은 무역 적자가 불러온 미국 내 양극화 때문
거기서 무엇을 봤나?
“실리콘밸리 기업의 임원 상당수가 인도인들이었다. 이들은 인도계 미국인이 아니다. 인도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이들이다. 이제 러스트벨트뿐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인구 구성도 바뀌고 있다. 실리콘밸리 원주민 입장에선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양극화의 그늘을 키운 측면도 크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미국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공적 자원을 투입하고 양적 완화를 했다. 금리를 낮춰도 해결이 안 되자 국채를 사서 금리를 낮췄다. 덕분에 대공황은 피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어떤 상처 말인가?
“금리가 바닥에 붙자 자산이 폭등했다. 즉, ‘이지 머니(Easy Money)’의 시대가 열린 거다. 사실 ‘자산 격차’와 ‘소득 격차’는 차원이 다르다. 자산은 소수만 갖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상위 5~10%가 전체 자산의 70~80%를 갖고 있다.”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트럼프를 불러온 건가?
“그렇다. 그때부터 미국에서는 펜타닐 등 마약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절망의 죽음’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보나?
“런던 사람들이 더는 런던에 거주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나게 됐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된 것이다. 세계화를 통해 런던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는 사이 소외당한 계층은 점점 늘어났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의 지지 세력도 교체됐다.
“월스트리트는 양적 완화에 방점을 두는 민주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최근 10년 사이 고학력자와 고소득자가 민주당 지지 세력으로 대거 편입됐다. 월스트리트, 실리콘밸리, 할리우드가 대표적이다. 정치 자금이 대거 유입되다 보니 민주당은 노조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지지층이 교체된 거다. 이 밖에 미국 국민 중에선 대의민주주의가 흔들린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왜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민주당과 공화당, 여야 모두 자신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가령 러스트벨트 40대 백인의 저학력, 무직 남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그를 기득권으로 볼 수 있을까? 이들 입장에선 자신을 대변할 사람이 정치권에 없는 셈이다. 트럼프라는 정치 신인이 대통령이 된 이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팬데믹까지 시작됐다. 세계화가 큰 타격을 입은 이유다.”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양극화의 그림자와 방치된 중·하층의 깊은 아픔이 트럼프를 다시 백악관으로 불러들였다”고 짚었다. 김상선 기자
그렇다고 미국이 달러 패권을 내려놓을 순 없을 것 같다.
“미국이 무역 적자를 내줘야 달러가 기축통화로 유지된다. 그동안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윤활유는 ‘달러 체제’였다. 그런데 트럼프는 무역 적자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의문이다. 트럼프는 왜 그럴까?
“달러 패권은 미국의 특권이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층은 다르게 생각한다. 이들은 해외에서 달러를 준비자산으로 사용하는 걸 불편하게 여긴다. 달러가 강세가 되면 미국 공장들이 해외로 나가기 때문이다.”
미국이 적자를 보는 대신 우리도 미국 국채를 대량 매입하지 않는가?
“과거 우리가 대미 무역에서 흑자를 내면 그 돈으로 미국 국채를 샀다. 자연스레 미국 국채 가격이 내려갔다. 가격이 내려가면 미국 모기지 금리도 낮아졌다. 즉, 미국은 국채도 팔고 달러도 파는 일석이조였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 적자 뒤에는 앞서 언급한 양극화가 있다. 결국 양극화의 피해자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추대한 것이다.”
“트럼프 최대 관심은 월가 아닌 실물경제”
월스트리트와 트럼프가 그리는 이상(理想)이 다른 것인가?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의 최근 발언이 대표적이다. 베센트 장관은 최근 ‘우리는 (주가지수)S&P 500을 최우선으로 보고 있지 않다. 우리는 10년 만기 국채 금리를 본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와 트럼프의 생각이 다르다는 거다.”
트럼프가 중시하는 건 무엇인가?
“트럼프는 월스트리트(뉴욕 금융계)가 아닌 메인스트리트(미 중소도시 상가 거리)를 중시한다. 월스트리트의 방점이 금융에 있다면, 메인스트리트의 핵심은 실물경제다. 트럼프는 실물경제, 즉 ‘국채 금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이 또한 지지층 때문인가?
“그렇다. 모기지, 카드 대출 등 모든 것이 국채 금리와 연관된다. 앞선 민주당의 바이든 행정부가 월스트리트에 ‘진심’이었던 것과 반대인 셈이다.”
트럼프는 ‘상호 관세’를 발표한 이후 돌연 90일 유예를 선언했다.
“이 또한 S&P 500을 의식한 것은 아니다. 주가 하락과는 관련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국채 시장(국채 금리 상승=국채 수익률 하락) 때문이다.”
국채 금리가 내리는데 주식도 폭락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통상 주식시장이 흔들리면 국채로 도피한다. 그러면 국채 금리는 자연스레 떨어진다. 이를 리스크 오프(Risk Off)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발표한 직후 주식이 폭락했으며, 국채도 던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주가가 떨어졌는데 국채 금리가 오르는 건 패닉으로 봐야 한다. 이는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이 들어왔다는 뜻이다. 마진콜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달러를 산소 찾듯이 찾기 시작했다. 당장 달러를 찾지 못하자 국채를 판 것이다. 국채 투매 현상이 발생한 이유다.”
이 와중에 트럼프의 바람과 달리 미 연준은 금리 인하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 초기에는 채권시장에 굉장히 많은 돈이 몰려 있었다. 이들은 트럼프가 취임하면 주가가 오르고, 채권이 내리고, 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봤다. 실제로 올해 1월까지는 미국 주식 시장이 괜찮았다. 그러나 2월부터 주가가 15~20% 하락하는 등 이상해졌다. 이후 트럼프가 관세를 발표하자 물가 상승에 대한 공포가 커졌다. 동시에 연준의 금리 인하 시사 발언은 쏙 들어갔다. 이후 4월 2일 트럼프가 강력한 상호관세를 발표하자 마진콜이 나왔다. 즉, 금리 인하에 베팅한 이들의 셈법이 꼬인 거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최근 “S&P 500을 최우선으로 보고 있지 않다. 우리는 10년 국채 금리를 본다”고언급했다. 이에 대해 김용범 전 기재부 제1차관은 “트럼프의 최대 관심은 실물경제”라고 설명했다. 김상선 기자
미국 배회하는 ‘리즈 트러스 공포’
김 전 차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이 상호관세를 유예할 거라고 예측했다.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발표하는 것을 보고 든 생각은 ‘24~48시간 이내에 연준이나 재무부가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심장마비가 올 것’이라는 거였다.”
왜 그렇게 판단했나?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 이튿날 국채 옥션이 예정돼 있었다. 제대로 된 해결책이 없으면 국채가 미달될 게 뻔했다. 연준이 임시 매입을 하거나, 재무부가 조치를 할 거라고 봤다. 국채 옥션이 실패하면 ‘리즈 트러스 모멘트(지난 2022년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44일 만에 사임한 데는 영국국채 가격 폭락과 펀드의 청산 압력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가 오기 때문이다. 결국 백악관이 나서서 움직였다. 12시간도 채 안 돼서 말이다. 과거 기재부 제1차관 시절 경험도 예측에 도움이 됐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으로 국제 유가는 급락했다. 공교롭게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이란 핵 협상 등 트럼프가 공들이는 주요 외교 상대가 거대 산유국이다.
“권위주의 정권, 즉 러시아와 이란은 유가에 민감하다. 국가 재정이 유가에 의존하는 사실상 ‘1차 함수’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트럼프가 외교 무대에서 공을 들이는 국가들이다.”
반면 유가 급락으로 셰일업계의 트럼프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셰일 채산성도 덩달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셰일도 큰 산업이지만, 유가 하락의 장점이 매우 크다. 우선 물가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바이든도 인플레이션 때문에 재임에 실패한 거 아닌가? 트럼프의 관세 발표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심해진 가운데 유가 하락으로 물가가 내려간다면 트럼프 입장에선 나쁘지 않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리즈 트러스 모멘트’를 피했다.
“트럼프 입장에선 ‘많이 얻었다’고 생각할 거다. 유럽연합(EU)도 미국에 상호 보복을 안 한다는 입장이며, 상호관세율 46%를 맞은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는 베트남과 미국의 협상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베트남에서 중간재를 만들어 미국으로 대량 수출하기 때문이다.”
다음 트럼프의 외교 상대는 북한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은 산유국도 아니며, 미국과의 무역 규모도 사실상 동결된 상태다. 이란·러시아와는 다른 셈법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를 보면 큰 목표와 방향성은 뚜렷하나, 세부 결정은 유동적인 것 같다. 다만, 북한이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의존한 나머지 미국과의 대화에 소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그 이유는?
“최근 북한이 러시아에 병참을 보낸 대가로 돈을 받는 등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 경제는 중국 의존도가 러시아보다 훨씬 높다. 러시아가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인 니즈를 맞춰주기는 어렵다.”
북한은 러시아판 ‘스위프트(SWIFT)’인 ‘미르(MIR) 결제시스템’에 가입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이 미르에 ‘형식상’ 가입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미르가 북·미 대화를 막을 정도의 파급력을 갖추기는 어렵다. 트럼프와 푸틴은 바이든과 푸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한 소통을 하는 사이다. 또 미르의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다. 세컨더리보이콧(제3국 제재) 때문이다.”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로 국제유가가 4년 만에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떨어진 가운데, 미국·이란은 4월 12일(현지시간) 고위급 이란 핵협상을 진행했다. [로이터=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24/c38d14e7-a5ce-477b-acc3-a86f7f051af3.jpg)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로 국제유가가 4년 만에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떨어진 가운데, 미국·이란은 4월 12일(현지시간) 고위급 이란 핵협상을 진행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중 갈등은 우리에게 시간 벌어주는 효과도 줘”
북·미 물밑 대화의 핵심 의제는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세컨더리 보이콧 하면 이란이 생각난다. 기재부 제1차관 시절 대이란 세컨더리 보이콧 때문에 힘들었다.”
이란 동결자금 70억 달러(우리나라에 동결돼 있던 70억 달러의 이란 자금은 트럼프의 2018년 이란 핵합의 탈퇴를 계기로 ‘원화·리얄화 결제시스템’ 가동이 중단되며 지난 2023년까지 국내에 묶여 있었다. IBK기업은행·우리은행에 예치돼 있던 이란 동결자금은 이후 스위스 은행을 통해 카타르 은행으로 송금됐다) 말인가?
“그렇다. 차관 재임 시절 이란에 70억 달러 동결자금을 돌려주기 위해 각종 협상을 벌였다. 결국 이란에 돌려주기로 미국과 합의까지 봤다. 문제는 그 어떤 은행도 선뜻 계좌를 안 빌려준다는 거였다. 은행 계좌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나라 은행에서 이란 은행으로 바로 송금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잠시 통로로 사용하는 것임에도 모든 은행이 꺼렸다. 세컨더리 보이콧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이란은 돈을 돌려달라며 우리 배를 나포하는 등 압박을 강화했다. 이란 입장에서 70억 달러, 그것도 하드 커런시(Hard Currency, 경화) 70억 달러는 매우 귀하다.”
미르 결제시스템의 성공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북한도 하드 커런시를 원하지 않을까?
“현재 진행 중인 북·미 물밑 대화의 내용과 결과에 달려 있다. 우리가 이란과 사용했던 원화-리얄화 결제시스템도 결국에는 미국의 허락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는가?”
현 북·미 물밑 대화는 북한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유지하면서도 대북 투자를 가능케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차기 우리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훗날 남북이 ‘원화·리얄화 결제시스템’과 유사한 결제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론 가능하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먼 훗날 가능할 거다. 또,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먼저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는 중국 억제다. 사실 미·중 관세 전쟁이 우리에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 그런가?
“오늘날 중국은 많은 영역에서 우리를 따라잡았다. 트럼프가 우리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셈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트럼프의 중국 억제는 우리 기업들이 중국의 덤핑으로 받는 고통을 일부 덜어주는 거다.”
미·중 전쟁이 지금처럼 과열된 채로 지속될까?
“지금과 같은 열기로 지속할 것 같지는 않다. 확실한 것은 지난 1기에 비해 훨씬 강력하게 중국을 몰아칠 거라는 점이다. 이번에는 기술과 금융까지 동원할 거다. 그래도 우리가 겁먹을 필요는 없다.”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
“트럼프는 경제의 논리로 정책을 세운다.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우리의 조선업, 방산,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특히 한·미 조선 협력의 장래가 밝다. 마지막으로 트럼프는 미국의 새로운 기준이 됐다. 트럼프 임기가 끝나도 미국이 다시 ‘정상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