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보기엔 보수, 우파 보기엔 진보…'예수의 눈' 좇은 교황 [view]

 
#풍경1 : 보수파의 반격이 시작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독일의 뮐러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자유주의 지도자를 선출하면 교회가 분열될 위험이 있다”며 곧 있을 콘클라베(교황 선출 위한 추기경단 회의)를 겨냥했다. 같은 독일 출신인 베네딕토 16세 교황 때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을 맡았던 그는 정통 보수파로 분류된다. 교회 안 보수파로부터 공격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럼 좌파일까.

#풍경2 :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한 직후였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샷은 교황을 향해 “대중주의 좌파(populist left)”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교황이 말하는 경제적 정의와 사회적 발언을 놓고 “순수한 마르크스주의”라고 비판한 라디오 방송도 있었다. 한때 해방신학이 대륙을 휩쓸었던 남미 출신 교황이란 점도 의혹 제기에 한몫했지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수와 진보 양쪽 진영에서 종종 공격을 받았다. 그것은 교황이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수와 진보 양쪽 진영에서 종종 공격을 받았다. 그것은 교황이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풍경3 : 아르헨티나에서는 정반대였다. 해방신학에 동조하지 않고 명확한 선을 그었다고 해서, 그는 군사 정권에 협력하는 보수 극우파로 오해를 받았다. 나중에 군사 정권에 쫓기던 사제에게 자신의 여권을 줘서 목숨을 구한 일이 밝혀진 다음에서야 오해가 풀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종 양쪽 진영에서 공격을 받았다. 좌파가 보기에 교황은 보수였고, 우파가 보기에 교황은 진보였다. 왜 그랬을까. 이유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좇는 건 눈이었다. 그건 내 편과 네 편을 나누고 쪼개는 눈이 아니었다. 강고한 교리의 눈도, 진영의 눈도, 이데올로기의 눈도 아니었다. 교황이 늘 묻고, 기도하며, 찾고자 한 건 다름 아닌 ‘예수의 눈’이었다.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교회를 찾는다면 어떡하겠습니까?”라는 당혹스런 물음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성경 속 교리와 진영의 논리로 몽둥이를 내려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예수의 눈을 찾았다. 그 눈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누구길래 그들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죄 없는 자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성경 속 예수의 눈이 녹아 있었다.


26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광장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 교황의 유언에 따라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소박한 관이 바닥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26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광장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 교황의 유언에 따라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소박한 관이 바닥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2년 전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가 열렸다. 그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관 속에 누운 전임 교황의 주검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긴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분의 온 생애를 집약하는 마지막 숨결입니다. 그분(예수)의 삶은 아버지에게 끝없이 자신을 맡기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찾고, 아버지의 손에 맡기는 일. 그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화두였다.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러니 프란치스코 교황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예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리스도의 눈을 통해 세상을 품으려 했던 무한의 중도(中道)에 훨씬 더 가깝다.

가톨릭 2000년 역사에서 그런 눈을 가졌던 교황이 얼마나 될까. 그와 동시대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감사하다. 당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온전히 맞춰질 때까지,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온전히 맞춰질 때까지 쉬지 않고 보여준 낮아짐과 사랑의 행보에 참 감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끝없이 자신의 마음을 맞추려 했다. 교황이기 전에 그가 수도자였던 이유다.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끝없이 자신의 마음을 맞추려 했다. 교황이기 전에 그가 수도자였던 이유다. 연합뉴스

 
이제 2~3주 후면 콘클라베가 열린다. 차기 교황은 누가 될까. 그의 교황 명은 무엇이 될까. 누가 되든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성과 사랑을 계승하길 소망한다. 인류에게 프란치스코 2세 교황, 프란치스코 3세 교황이 계속 등장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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