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현우(가명·24)씨가 지난해 9월부터 앉아 근무하던 요양원 거실 구석의 플라스틱 의자. 강씨는 소파에 앉는 것도 금지당한 채 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요양원 환자 모니터링 업무를 하라고 지시 받았다. 독자 제공.
저희한테 사전 동의는 받았어요? 일을 못할 수도 있다고 동의는 받은 거냐고요.
지난해 9월 말 경기 오산 소재 한 요양원에서 일하던 사회복무요원 강현우(가명·24)씨는 담당 요양보호사로부터 이같은 말을 들었다. 발등이 정상보다 높이 올라오는 요족 때문에 병역 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은 강씨는 오래 서 있으면 발목부터 척추까지 욱신거리는 통증이 타고 올라왔다. 당초 요양보조 업무를 하기 위해 복지 분야에 지원해 지난해 5월 요양원에 배치된 뒤 무거운 가전제품을 드는 등 육체노동을 도맡았다. 이에 석 달 만에 기존 허리·발 통증은 물론 오른쪽 어깨에 어깨충돌증후군까지 생겼다.
강씨에 따르면 요양원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업무 조정을 요청하자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한다. 휴게실을 못 쓰게 하고 요양원 거실 한 편에 플라스틱 간이 의자를 내준 뒤 푹신한 소파에 앉으려고 하면 비키라고 하는 식이었다. 강씨는 “폐쇄회로(CC)TV로 근태를 감시하고, 바뀐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미묘한 차별도 했다”며 “신체적 결함을 허락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말까지 들으니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해당 요양원 관계자는 “강씨 요구에 따라 시설에서 할 수 있는 상담과 배려는 할 만큼 했다. 병무청과 오산시청에서의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며 “더 드릴 말씀은 없다”고 답했다.

강현우(가명·24)씨가 지난 9월 육체노동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근무시설에 제출한 진단서. 독자제공.
사회복무요원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이 됐지만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병역법 제31조의5는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사회복무요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복무기관 내 괴롭힘’으로 정의한다. 지난해 5월 1일부터 개정 병역법이 시행되면서 괴롭힘이 발생하면 기관은 근무 장소 변경, 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27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열린 ‘복무기관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주년 괴롭힘 증언대회에서 괴롭힘 당사자가 복면을 쓰고 발언하고 있다. 오소영 기자.
강씨는 지난달 병무청과 면담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육체노동을 못한다는 이유로 또 괴롭힘을 당할까 봐 우려된다며 복지가 아닌 행정 직무로의 근무지 변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병무청 관계자는 “아직 정식 신고가 접수된 건도 아니다”며 “근무장소 조정도 절차가 있기에 복무기관 내 괴롭힘이 있다고 바로 근무기관까지 옮기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오산시청 측도 “행정 분야로 옮기려면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심신장애가 있어야 하는데 그정도인지 알 수 없고 다른 복지시설로의 이동만 가능하다”고 했다.
오산시청 담당자는 “시설에서도 일을 안 시키는 등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었고 난감해했다”며 “시청에서 다른 시설을 알아보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부산의 한 공공기관에서 지난해까지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했던 최영수(가명·24)씨는 1평 남짓의 해당 초소에서 에어컨도 없이 여름을 났다. 독자 제공.
사회복무요원들은 현실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것도 어렵다고 호소한다. 27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열린 ‘복무기관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주년 괴롭힘 증언대회에 선 최영수(가명·24)씨는 보복성 복무연장이 두려워 소집해제 후에야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에 괴롭힘 사실을 털어놨다고 했다. 최씨는 지난해 부산에서 1평 남짓한 에어컨도 없는 초소에서 여름을 견뎠다고 주장했다. 복무기관 실장으로부터 화장실 사용을 제한당하며 “마려우면 바지에다 용변 봐라”는 모욕적인 말도 들었다.
괴롭힘 당사자들은 법이 사문화되지 않으려면 병무청의 적극적인 조치와 법 개정이 동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갑질 119의 2023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회복무요원이 겪은 ‘따돌림·차별’은 31.1%로 직장인 평균(11.1%)에 비해 2.8배 높았다. 직장갑질 119 법률스텝을 맡은 이미소 노무사는 “현행법에선 근무장소 변경이라고만 언급해 층이나 자리를 옮기기만 해도 조치한 것으로 된다”며 “근무지 재지정 등 적극적인 방안도 법안에 명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근무지를 지정하는 시스템부터 개선하자는 대안도 나온다. 현재로선 사회복무요원이 배치될 때 과거 병력과 보충역 이유가 근무기관에 공유되지 않는다. 하 노무사는 “기관에서 원하는 노동 종류에 맞는 인력을 적성에 따라 배치해 충돌을 방지해야 한다”며 “아울러 근무환경 실태조사도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