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함 타고, 불고기 도시락 먹고…정기선·김동관 만난 미 해군성 장관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과 함께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야드를 둘러보며 건조 중인 함정들을 소개하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과 함께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야드를 둘러보며 건조 중인 함정들을 소개하고 있다.

“브라보 줄루(Bravo Zulu)”

지난달 30일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본사를 방문한 존 펠란 미국 해군성 장관이 방명록에 적은 내용이다. 미 해군 무선 통신에 쓰이는 용어로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잘했다”라는 의미다. 이번 펠란 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국내 조선업계와 미 해군의 협력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펠란 장관은 전날 HD현대중공업에서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만나 한미 조선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펠란 장관은 HD현대중공업의 선박 건조 현장을 살펴본 뒤 “이처럼 우수한 역량을 갖춘 조선소와 협력한다면 제때 선박 유지·보수가 가능해져 미 해군 함정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 수석부회장은 “한국과 미국은 혈맹으로 맺어진 친구이자 최고의 동맹국”이라며 “HD현대가 가진 최고의 기술력과 선박 건조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 조선산업 재건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화답했다.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이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최신예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에 승선해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이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최신예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에 승선해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이날 펠란 장관은 정기 검사를 위해 조선소에 들어온 한국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에 올라 함정에 대한 설명을 들기도 했다. 펠란 장관이 함정에 오를 때 정조대왕함 승조원들이 거수경례하면서 환영하자 펠란 장관도 해군 장병들에게 경례로 화답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펠란 장관은 방명록에 “브라보 줄루”라고 적었고, 정 수석부회장은 “우리 함께 힘을 합쳐서 미국 조선업 기반을 세우자”라고 적으며 협력을 강조했다.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오른쪽 첫 번째)이 미국 해군성 존 펠란 장관(오른쪽 두 번째)에게 선박 블록 조립공장을 소개하고 있다.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오른쪽 첫 번째)이 미국 해군성 존 펠란 장관(오른쪽 두 번째)에게 선박 블록 조립공장을 소개하고 있다.

펠란 장관은 이후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찾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만났다. 펠란 장관은 거제사업장에서 유지·보수·정비(MRO)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미 해군의 급유함 유콘함을 살펴본 뒤 “미 해군과 한국 해양 산업의 관계는 선박 정비를 넘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한 초석”이라며 “(조선 협력이) 양국 간의 동맹 관계를 더욱 강화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 부회장은 “한화오션은 미 해군의 전략적 수요에 맞춰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건조 체계를 완비하고 있다”라며 “미국 내 여러 조선소를 확보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북미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에 이어 추가 현지 생산시설 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다.

함선 시찰이 끝난 뒤 두 사람은 한·미 관계자 30여명과 함께 조선소 경내에 마련된 지원센터에서 저녁식사를 도시락으로 해결하며 40분가량 심도깊은 대화를 더 나눴다. 도시락 메뉴는 불고기 등 한식이었다. 사전 일정조율 과정에서 펠란 장관이 “도시락 미팅으로 현장 체류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한화 측이 한국의 대표음식인 불고기를 메뉴로 정하며 미팅에 공을 들였다.

미국 해군성 존 펠란 장관(오른쪽 첫 번째)과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유콘’함 정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미국 해군성 존 펠란 장관(오른쪽 첫 번째)과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유콘’함 정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번 펠란 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국내 조선업계의 미국 현지 진출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HD현대는 지난달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 헌팅턴잉걸스와 조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현지 시설 확보에 나섰다. 헌팅턴잉걸스가 운영하는 미시시피주 잉걸스 조선소를 통해 현지에서 미 해군 함정을 함께 건조한다는 구상이다. 한화오션은 지난 3월 미 해군의 협력업체인 호주의 방산기업 오스탈의 지분 9.9%를 인수했다. 미 해군에 고속수송함 등 중소형 특수선을 납품하는 오스탈은 앨라배마주와 캘리포니아주에 조선소를 가지고 있다.

토드 영 미국 인디애나주 상원의원이 지난달 메흐메트 오즈 건강보험청장 인사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토드 영 미국 인디애나주 상원의원이 지난달 메흐메트 오즈 건강보험청장 인사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미국 의회서도 한미 조선업 협력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공화당 소속의 토드 영 상원의원은 30일(현지시간)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대담에서 “우리 동맹국 중 한국과 일본은 선박 건조 분야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기회를 보고 있다”라며 “반도체법이라는 성공 모델을 기반으로 협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기술 수출을 제한하고, 미국 현지 생산시설 투자 기업에 보조금 등 혜택을 주는 반도체법방식을 조선업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영 의원을 비롯해 마크 켈리(민주당) 상원의원 등은 지난달 외국 조선소의 선박 건조를 허용하고, 미국 조선업 인프라 투자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을 발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