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홍보 영상 캡처
윤 전 대통령은 이 제안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다. 그는 “이곳 성모병원이 권역응급의료센터로 경기 북부의 중증 응급환자를 책임지고 있어 부담이 크다고 들었다”며 “노인 인구 비율도 높고 군부대도 있어서 응급환자가 많다고 들었는데,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에서 애쓰는 의료진께 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의정부성모병원 의료진 말대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임종 직전에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오는 환자가 적지 않다. 윤 전 대통령 방문 이후 대통령실은 응급실 의료진의 연명의료 환자 대응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고 한다. 뾰족한 방안을 내지는 못했다.
요양병원에서 숨지는 환자도 적지 않다. 1일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2023년 요양병원에서 숨진 사람이 6만803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기관 사망자(20만426명, 병원 유형이 확인된 사망자 기준)의 33.9%에 달한다. 2023년 전체 사망자(35만2511명)의 19.3%이다.
한 해 사망자 10명 중 2명꼴로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다. 2023년 요양병원 사망자는 일반종합병원 사망자(7만1508명)보다 적지만 상급종합병원 사망자(4만6108명)보다 많다. 요양병원 사망자 비율도 점차 올라간다. 2021년 의료기관 사망자 중 요양병원 사망자 비율이 32.9%, 2022년 33.3%, 2023년 33.9%이다.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으면 요양병원에서 중단하면 될 터인데 왜 대형병원 응급실로 실려갈까. 현행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의료기관이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하려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이 위원회는 연명의료 중단과 관련해 환자와 가족을 상담하고 의료기관 종사자에게 의료 윤리를 교육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해당 병원의 의료인, 종교계ㆍ법조계ㆍ윤리학계ㆍ시민단체 등의 추천자 2명 등 5명 이상으로 구성한다. 언뜻 보기에도 까다로운 면이 있다.
큰 병원이야 별문제 없지만, 요양병원은 위원회를 꾸리는 게 쉽지 않다.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요양병원 1342곳 중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둔 데는 39곳이다. 직접 설치하지 못하면 큰 병원의 윤리위원회에 위탁할 수 있는데, 그런 데가 116곳이다(공용윤리위원회 제도). 둘을 합해 155곳이다. 11.5%만 요건을 갖췄다.
그런데 공용윤리위원회를 운영하는 큰 병원이 전국에 13개뿐이다. 경기도에는 국립암센터뿐이다. 영남권에도 부산대병원·영남대병원 둘 뿐이다. 요양병원이 위탁하려고 해도 할 데가 마땅하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종 직전 상황이 되면 환자가 큰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고, 거기서 연명의료 중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하려면 환자와 가족에게 제도의 개념을 설명해야 한다.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는지, 이런 게 없으면 환자의 의사가 어떠한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의정부성모병원 의료진이 이런 어려움을 호소했던 거다. 환자 입장에서도 요양병원에서 편히 존엄사를 이행하면 좋지만 그게 안 되니 응급실로 실려가고, 그곳 의료진은 응급환자 진료하기도 바쁜데 임종환자까지 해결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정부는 요양병원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나 위탁을 권고하지만, 진도가 그리 빨리 나가지 않는다.
조정숙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연명의료관리센터장은 "초고령화 시대에 요양병원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 공용윤리위원회 확대, 요양병원 연명의료 이행 수가 현실화 등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택임종도 10년 넘게 정체 상태다. 재택임종이 '노인의 꿈'이지만 돌봄체계 미비 등의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벽 탓에 전체 사망의 15%를 맴돌고 있다. 2024년 사망자의 15.2%가 집에서 떠났다. 10년 전에는 16.5%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