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서 군인들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반 사항 종합 검토"
러시아가 전승절 열병식에 한국을 초청한 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는 같은 해 3월 한국이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이후 한국을 비롯한 비우호국은 전승절 초청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정상 참석을 기준으로는 러시아는 개전 첫해인 2022년에는 외국 정상을 초청하지 않았고, 2023년에는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7개국 정상이 초청받아 참석했다. 지난해에는 이에 더해 라오스, 쿠바 등 9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개전 이후 우호적 국가들만 제한적으로 초청했던 것과 달리 올해 80주년 전승절 열병식은 정주년(5년·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이라는 점에서 초청 범위를 더욱 넓혀 흥행몰이에 나서겠다는 게 러시아의 의도로 보인다. 국방력을 부각하는 동시에 쿠르스크 탈환 등 전과를 널리 알리고, 러시아가 반서방 진영의 구심점으로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과시하려는 속셈이다.
이날 우샤코프 보좌관은 "열병식에 중국·브라질 등 29개국 정상이 참석하고 중국·베트남·미얀마 등 13개국 군의 부대가 붉은광장에서 행진한다"고 예고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러 군사 협력 전에는 정주년에 해당하는 러시아의 전승절 열병식마다 고위급 인사가 참석해 예우했다. 2005년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015년에는 윤상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2005년 5월 9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전승 60주년 기념식에 참석중인 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 내외가 크렘린궁에 도착하는 장면이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 생중계되고 있다. 중앙포토
레드라인 넘으며 韓 안보 위협
지난달 말 북·러는 양국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따랐다는 논리를 들며 파병을 공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불법적 군사 협력을 합법적인 것처럼 포장하고 양국 관계가 사실상의 '혈맹'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미국이 주도하는 종전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북한군 추가 파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과시하는 무대에 주러시아 한국 대사 등 고위급 정부 인사를 보낼 경우 그 자체로 러시아와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상 외교가 사실상 멈춘 권한대행 체제 아래에서 한국은 전승절 행사 참석 문제를 두고 러시아의 행동 변화 유도 등 외교적으로 주고받기를 시도할 여력조차 없는 형편이다.
외교부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 일본 등 우방국 선택을 살펴보며 열병식 참석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유럽 지도자들에게 전승절 불참을 촉구했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린 트레이시 미국 대사의 참석 여부는 아직 미정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앞선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러시아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며 비교적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5일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를 비롯한 러시아 주재 외교단 150여명은 러시아 전승절을 기념해 모스크바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EPA=연합뉴스
北, 예상 외 미온적 태도
북한이 별도의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지 않고 현지에 있는 신홍철 주러시아 대사의 참석으로 갈음한다면 이는 러시아가 최근 가장 공을 들인 행사를 홀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이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 북한군을 열병식에 초청했지만, 크렘린궁은 현재 열병식 참가국 명단에 북한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북·러가 최근 파병 '반대급부'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크렘린궁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이며, 북한 고위급 인사나 북한군의 '깜짝 등판' 가능성 등 행사 당일까지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는 기류가 정부 내에서는 포착된다.
한편 북한 당국이 전사한 파병 북한군의 유족에게 평양 거주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