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안보로 '관세 실점' 만회?…트럼프 "나는 피스메이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중동의 첫 번째 방문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6000억 달러(약 850조원)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그러면서 전세계 갈등 상황을 한꺼번에 꺼내들며 “나는 피스메이커(peace maker)”라고 주장하는 등 성과 행보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에 부과했던 145%의 관세를 30%로 낮추기로 합의하면서 불거진 ‘판정패’ 논란과 관련해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직접 담판 짓겠다고 했다. ‘관세 후퇴’로 인한 비판을 만회하려는 국면 전환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사우디와 ‘군사지원-투자’ 빅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서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한 뒤 ‘전략적 경제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엔 6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에너지, 국방, 자원 분야의 협력안이 담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무함마드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무함마드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12개 방산기업이 사우디에 1420억 달러(약 201조원)에 달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방위장비를 판매하는 계약을 비롯해 사우디 군대 역량 강화를 위해 훈련을 지원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미국이 사우디에 안보 협력을 지원하고, 그 대가로 대규모 투자를 받는 ‘빅딜’의 성격이 강하다.

사우디와 협정을 체결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당신의 위대한 조국에 계속해서 매우 잘 봉사(service)할 것”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사우디에서의 위대한 하루(A great day in Saudi Arabia)”라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까지 사우디에 이어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를 잇달아 방문한다. 사우디를 시작으로 막강한 ‘오일 머니’를 보유한 나머지 중동의 부국과도 사우디와 유사한 형태의 거래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피스메이커”…안보 한꺼번에 ‘급발진’

트럼프 대통령은 동시에 작정한 듯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미뤘던 안보 이슈를 집중적으로 꺼내 들었다. 먼저 2012년 단교한 시리아에 “모든 제재를 해제할 것”이라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튀르키예에서 시리아의 신임 외무장관과 회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사우디아라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임시대통령과 정상회담 자리에서 “시리아의 새 정부와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다”며 “제재 해제는 시리아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알샤라 대통령을 만난 건 25년만이다. 

둘의 회동에 대해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알샤라 대통령에게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국교 정상화 협정)에 서명하라고 권유했다”며 “알샤라 대통령은 석유, 가스 분야에 대한 미국 회사의 투자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회담에 화상으로 참석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 대한 제재 해제를 결정한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다른 국가들에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백악관은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적은 ″사우디에서의 위대한 하루″라는 게시물과 함께 현재 사진을 편집해 백악관 SNS에 계정에 올렸다. 사진 백악관 페이스북

백악관은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적은 ″사우디에서의 위대한 하루″라는 게시물과 함께 현재 사진을 편집해 백악관 SNS에 계정에 올렸다. 사진 백악관 페이스북

이란에 대해선 “영원한 적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며 “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지만, 우리는 이란이 위대한 국가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이 이웃 국가를 계속 공격한다면 미국은 최대 압박을 가하고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0)’로 만들겠다”고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실상 안보 관련 '과제'를 일거에 해결하겠다며 “내 소망은 피스메이커이자 통합자(unifier)이고, 미국 대통령으로서 우선순위는 항상 평화와 파트너십”이라고 주장했다. 동맹국이 미국을 “약탈했다”며 노골적인 비난을 가하며 무차별적으로 관세를 부과했던 것과는 상당한 온도차가 난다.

“푸틴 만날수도”…소외된 이스라엘 ‘당혹’

“취임 24시간 내에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던 '두 개의 전쟁'에 대해서도 급진적 입장을 내놨다. 그는 15일 튀르키예에서 열릴 예정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접촉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참석을 전제로 “내가 가는 걸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양측의 접촉은 러시아가 먼저 제안한 이후 우크라이나가 푸틴 대통령의 참석을 역제안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지만, 크렘린궁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가자지구 문제와 관련해선 “가자 주민들은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자격이 있고, 우리는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휴전협상에 속도를 낼 뜻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순방에서 이스라엘이 제외됐고, 중동 현안에 대한 결정 과정에서도 공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스라엘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 당혹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에 대한 군사작전 확대에 나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알리지 않고 가자에 억류됐던 이스라엘계 미국인 병사 에단 알렉산더에 대한 석방 협상을 진행했다. 알렉산더는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 있던 마지막 미국 국적자다. 

“외교 성과 욕심”…“후퇴 반복 패턴 노출”

이스라엘의 싱크탱크 국가안보연구소(INSS)는 “미국은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배제하는 새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며 “외교 성과를 얻으려는 욕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외교 소식통도 “관세전쟁에서 물러났다는 비판에 직면한 트럼프는 다른 성과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승전을 눈앞에 뒀다고 생각하는 푸틴이 휴전에 응할지부터 의문”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왕궁에서 양해각서(MOU) 체결식을 마친 뒤 차량편으로 호텔로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왕궁에서 양해각서(MOU) 체결식을 마친 뒤 차량편으로 호텔로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판정패로 평가받은 관세 관련 언급을 최소화했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을 직접 상대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본다”며 “영국과의 협상에서도 타결이 임박해 돼지고기와 에탄올에 대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직접 통화했다”고 답했다. 스스로 담판에 나서 부정적 평가를 받은 관세전쟁을 ‘승리’로 바꾸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는 극단적 입장을 취하다가 결국 물러서서 스스로 승리를 선언해왔다”며 “대중 관세 협상을 통해 상대국들이 이 패턴을 이미 눈치채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문제가 당면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관세에서 트럼프가 40일만에 물러난 것을 확인한 러시아와 이란은 트럼프의 행동을 지켜본 뒤 전략을 다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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