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에 바람맞은 젤렌스키 "러 협상단, 장식수준" 강력 비판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1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차려진 협상장에서 마주 앉는다. 전쟁 발발 이후 3년 2개 월만의 재회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잇따라 불참 의사를 밝힌데다, 튀르키예를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앙카라에만 머물 전망이라 당초 관심을 끈 3국(미·러·우)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게 됐다. 영토나 안보보장 등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입장차도 커 협상에서 큰 진전이 있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협상은 시작 전부터 줄다리기 양상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 대표단은 이미 이스탄불에 있고, 오전에는 아직 오지 않은 우크라이나 측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아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튀르키예 외무부 관계자는 로이터에 “회담 시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연기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협상 장소는 돌마바흐체 궁전 대통령 집무실로 2022년 3월에도 양국은 이곳에서 마지막 협상을 벌였다.

15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협상이 이뤄질 튀르키예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취재진들이 모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협상이 이뤄질 튀르키예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취재진들이 모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이스탄불 회담에 참석하지 않으며, 조만간 튀르키예를 방문할 계획도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11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안한 정상 간 직접 협상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지난 2022년 자신과 협상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고, 지난해 5월 젤렌스키 대통령 임기가 만료돼 적법성을 잃었다고 보고 정상회담에 회의적 입장을 보여왔다. 푸틴 대통령은 협상 대표로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보좌관을 보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메딘스키를 협상단 전면에 다시 내세움으로써 이번 협상이 3년 전 결렬된 협상의 재개라는 의미를 부각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메딘스키는 2022년 3월 이스탄불에서 진행된 마지막 양국 협상에서 러시아측 대표단 단장을 맡았다. 뉴욕타임스는 “푸틴은 트럼프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협상은 하되, 시간을 끌며 우크라이나의 힘을 뺄 생각”이라고 해석했다. 러시아 대표단에는 메딘스키 외에 미하일 갈루진 외교차관, 이고리 코스튜코프 러시아군 총정찰국장, 알렉산드르 포민 국방차관등이 포함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4일 크렘린궁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4일 크렘린궁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의 불참 소식에 회담 참석을 고려했던 트럼프 대통령도 이스탄불에 오지 않는다고 로이터통신이 미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카타르 도하에서 “(러·우 협상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면 나는 금요일(16일)에 (이스탄불에) 갈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일단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브 위트코프·키스 켈로그 특사 등이 튀르키예에서 양국 간 협상을 중재할 예정이다.


푸틴 대통령에 ‘바람’을 맞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튀르키예에 도착해 러시아 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앙카라 에센보가 공항에 내린 젤렌스키 대통령은 취재진에 “러시아 측 (협상) 참석자 명단을 공식 통보받진 않았지만 사실상 장식 수준에 가깝다. 러시아에서 누가 결정을 내리는 지 모두 알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의 협상 불참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이 오지 않으면 이스탄불에 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온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회담 뒤 다음 행보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젤렌스키는) 광대·패배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에센보가 공항에 도착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에센보가 공항에 도착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양국 협상의 격이 정상회담에서 실무진 회담으로 낮아지면서 협상 전망은 어두워졌다. WSJ은 “회담을 둘러싸고 양측이 진전의 의지가 있다는 것만 보여주려 할 뿐 최종 목표는 양보하지 않고 줄다리기만 벌인다. 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양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가장 이견이 큰 쟁점은 영토다. 러시아는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비롯해 이번 전쟁에서 점령한 루한스크·자포리자·도네츠크·헤르손 지역을 자국 영토로 인정받으려 한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영토 포기는 국민 정서와 헌법상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전후 우크라이나의 안보보장 방안도 걸림돌이다.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은 포기하는 대신 나토 가입에 준하는 안보보장, 무엇보다 미국의 지원이 개입된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유럽에선 자체 안전보장군을 우크라이나에 배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에는 그 어떤 외국 군대와 무기를 배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우크라이나군 자체도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對)러 제재도 쟁점 중 하나다. 러시아는 휴전 조건으로 서방이 부과한 모든 제재의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러시아의 휴전 준수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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