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경기 의정부시 (구)고산초 부지. 굳게 닫힌 철문 안쪽엔 군데군데 파란색 페인트가 벗겨진 2층짜리 초등학교 건물이 덩그러니 서있었고, 학교 방문자는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적힌 노란색 알림판은 색이 바래고 갈라졌다. 박종서 기자
지난 14일 경기 의정부시 (구)고산초. 굳게 닫힌 철문 안쪽엔 군데군데 파란색 페인트가 벗겨진 2층짜리 초등학교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지난 2011년 완공된 인조잔디 운동장엔 학생들의 웃음소리 대신 비닐과 물병 등 쓰레기가 흩어져있었다. 교문 앞엔 ‘교육환경 보호구역: 학교 근처 오염물질, 유해시설 등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경고문이 있었지만, 교문으로부터 5m 떨어진 담장 옆엔 다 쓴 식용유통 30여 개가 쌓인 채 방치 중이었다. 말라붙은 수십 개의 담배꽁초도 종이컵에 담겨 버려져 있었다.

지난 14일 (구)고산초 교문 앞 ‘교육환경 보호구역: 학교 근처 오염물질, 유해시설 등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경고문이 있어있다. 하지만 교문으로부터 5m 떨어진 담장 옆엔 다 쓴 식용유통 30여개가 쌓인 채 방치 중이었다. 오소영 기자
(구)고산초는 지난 1946년 개교한 뒤 학생 수 감소 등을 이유로 지난해 폐교했다. 1973년 804명(13개 학급)의 학생 다니던 이 학교는 50여년 뒤 40명(1개 학급)으로 약 93.8% 줄었다.
학령인구 감소 등을 이유로 전국에서 폐교가 증가하며 지역사회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시·도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 등에선 폐교를 임대하거나 자체활용을 하는 등 방안을 찾고 있지만, 폐교 활용은 더딘 속도를 보인다. 이에 폐교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고산초 인근에서 25년간 슈퍼를 운영했던 조윤경(52)씨는 폐교 후 과자 매대를 정리하고 공방으로 업종을 바꿨다. 인형과 가방이 놓인 선반은 원래 과자 매대가 있던 위치다. 오소영 기자
(구)고산초 인근에서 25년간 슈퍼를 운영했던 조윤경(52)씨는“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아 속상하다”며 “폐교 후엔 아이들 사라고 마련해둔 과자 매대를 다 정리하고 뜨개질 공방으로 업종을 바꿨다”고 말했다. 주민 이정구(73)씨는 “주민들이 폐교에 새 시설이 들어오길 기대만 하는 상황”이라며 “폐교 후 1년째 출입을 못 하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도 폐교가 방치되긴 마찬가지다. 인천 강화도 마리산초는 1999년 문 닫은 뒤 2000년부터 문화예술원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지난 2023년 임대가 종료됐고, 용도를 찾지 못한 채 남아있다. 인천남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문화예술체육 공간 조성 예정이나 현재 기존 대부자와 소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인천 강화도 마리산초에 텐트 3개가 찢어진 채 방치돼 있다. 마리산초는 1999년 폐교 후 2023년까지 문화예술원으로 활용됐다. 박종서 기자
15일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 폐교 수는 4008곳으로 지난해 3월(3955곳)보다 53곳이 늘었다. 이중 경기 지역 폐교는 지난해 183곳에서 올해 193곳으로 늘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5.5%)을 보였다. 이어 ▶부산 4.2% ▶전북 3% ▶충남 2.9% ▶강원 1.5% 등 순으로 높았다. 미활용 폐교는 지난 3월 기준 376곳으로 지난해 3월 367곳에 비해 늘었다. 시·도교육청 등에서 보유 중인 폐교 1368곳 중 27.5%가 방치된 셈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주민 운동 공간, 주차장으로 활용하기도

지난 3월 서울화양초 운동장에서 김성자(80)씨가 무릎 재활을 위해 걷고 있는 모습. 지난 2023년 학생 수 감소로 폐교한 광진구 서울화양초는 주차장 및 운동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오소영 기자
50년째 서울화양초 인근에 사는 김성자(80)씨에게 폐교는 재활 운동 시설이라고 한다. 김씨는 “무릎 재활을 위해 매일 30분씩은 걸어야 한다. 예전에는 인도 없는 골목길을 오토바이에 치일까 무서워하며 걸었다면, 운동장은 그런 걱정 없이 맘 놓고 산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매일 산책하며 동네 할머니들끼리도 친해졌다. 폐교는 이제 ‘사랑방’이 됐다”고 했다.
폐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폐교 전에 주민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청사진을 그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는 당분간 급격히 늘어날 예정”이라며 “폐교가 논의될 때부터 새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하다. 교육청·지자체 등에서 준비위원회를 꾸려 사전에 논의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폐교로 발생한 부지를 최대한 잘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기숙사·복합문화공간 등 최대 다수에게 최대 효용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재활용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