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기업도 자리이타 중요"…'풀꽃' 나태주 시인의 조언

제10회 CJ도너스캠프 문예공모전 시상식을 위해 지난 7일 서울 중구 CJ인재원을 방문한 나태주 시인이 수상작을 모은 문예집 ‘꿈이 자라는 방’을 들고 사진 촬영을 했다. 사진 CJ나눔재단

제10회 CJ도너스캠프 문예공모전 시상식을 위해 지난 7일 서울 중구 CJ인재원을 방문한 나태주 시인이 수상작을 모은 문예집 ‘꿈이 자라는 방’을 들고 사진 촬영을 했다. 사진 CJ나눔재단

 
“여든 살이 되고 나서 소나무에 대한 애정을 철회하게 됐다. 독야청청(獨也靑靑) 푸른 대신 그늘 아래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더라. 나무도 사람도 기업도, 자기 뿐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가 가장 중요하다.”

자택이 있는 충남 공주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나태주(80) 시인이 지난 7일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3년째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CJ도너스캠프 문예공모전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올해로 10회를 맞은 이 공모전은 지난 2015년 CJ나눔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아 시작된 지원 사업이다. 전국 4000여 개 아동복지기관의 보살핌을 받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생각을 살피고, 자존감을 높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매년 그해 수상작 123편을 모아 문예집 ‘꿈이 자라는 방’도 출간한다. 지난 10년간 3635개 지역아동센터가 참여해 2만4434편의 작품이 출품됐고, 1773명 아동이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기업, 열심히 벌고 또 나눠야”

지난 7일 제10회 CJ도너스캠프 문예공모전 시상식에서 수상자들과 심사위원 나태주 시인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CJ나눔재단

지난 7일 제10회 CJ도너스캠프 문예공모전 시상식에서 수상자들과 심사위원 나태주 시인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CJ나눔재단

 
이날 중앙일보와 만난 나 시인은 CJ나눔재단의 활동을 자리이타의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하며 “기업이 열심히 돈을 벌었다면 그 성취를 주변과 나눠야 한다. 널리 베푸는 것이 기업의 덕성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용하고 꾸준한 지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조선 시절 류이주 대감은 쌀이 가득 든 뒤주에 구멍을 내고 누구나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말을 써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있는 식솔들에게 누가 얼마나 담아가는지 보지 못하도록 했다고 하더라”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조차 힘들고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베풀고도 베푼 것에 대해 생색내지 않으면 좋겠다. 프랑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듯, 국내 기업들도 타인능해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기쁨 느끼길”

제10회 CJ도너스캠프 문예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나태주 시인이 수상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CJ나눔재단

제10회 CJ도너스캠프 문예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나태주 시인이 수상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CJ나눔재단

 
나 시인은 기업뿐 아니라 개인들도 남을 행복하게 하는 기쁨을 알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며 행복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자리이타”라며 “인생의 6부 능선까지 개인주의로 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인생은 얼마나 성취했느냐 보다, 어떤 태도를 갖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가 결국 나를 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 시인은 “주머니를 털어 아이에게 사탕을 사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 하는 게 어른의 마음이 아닐까.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나도 웃을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고 했다.

“위태로운 아이들에게 희망 되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날 나 시인의 이야기는 대표작 ‘풀꽃’과도 맞닿았다. 그는 이번 공모전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마음 깊은 곳에 담긴 그리움을 달래고 자신감을 심어준다고 봤다. 그는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낸 아이들의 사연을 보면 모두 위태위태하다. 사랑이 고픈, 외로움과 그리움이 가득한 아이들의 마음이 담겼다”며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죽을 것만 같았던 괴로움 속에서 시를 썼다. 등단 심사에서 박목월 시인이 나를 뽑아줬고 그래서 내가 살았다”며 “수상자들도 이번 공모전을 통해 ‘나의 능력과 존재감을 인정 받았다’는 자신감을 가질 것이라고 본다. 아이들이 힘 있게 개울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희망을 갖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결핍의 중요성

하지만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는 오히려 결핍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만, 독립된 인격체로 자랄 힘을 잃어버릴까 걱정하는 마음이다. 나 시인은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다. 필요한 시기에 스스로 힘을 내서 고난을 극복하고 그것을 통해 성취감을 느껴야 하는데 요즘은 아이들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함께 여행을 하든, 고생을 해보든 자녀와 함께 결핍을 경험해보길 권한다”며 “힘겹게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는 매미처럼, 한층 성숙해진 자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든의 시인이 어린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