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5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5000t급 신형다목적구축함 ‘최현호’ 진수식이 남포조선소에서 진행됐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노동신문은 22일 "새로 건조한 5000t급 구축함 진수식이 5월 21일 청진조선소에서 진행되었다"며 구축함 진수과정에서 '엄중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진수 과정에서 미숙한 지휘와 조작 부주의로 인해 대차 이동이 평행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며 "이로 인해 함미 부분의 진수 썰매가 먼저 이탈됐고, 일부 구간의 선저(배의 밑바닥) 파공으로 함의 균형이 파괴되며 함수 부분이 선대에서 이탈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7월 사고가 발생한 함경북도 청진조선소를 시찰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 청진항의 대형 함정 진수 동향을 사전에 추적 감시하고 있었으며, 측면 진수가 실패했다고 평가한다"며 "(새 구축함은) 크기나 규모 이런 것들을 볼 때 최현호와 비슷한 장비를 갖춘 것으로 보고 있고, 현재 바다에 넘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날 진수식에 참석한 김정은은 "이것은 순수 부주의와 무책임성, 비과학적인 경험주의에 인해산생된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도저히 용납할 수도 없는 심각한 중대 사고이며 범죄적 행위"라고 질책했다. 사고 원인을 부주의 등으로 특정한 건 새 구축함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진수식에서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가 "우리 국가의 존위와 자존심을 한순간에 추락"시켰다며 "구축함을 시급히 원상복원 하는 것은 단순한 실무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권위와 직결된 정치적 문제이므로 당중앙위원회 6월 전원회의 전으로 무조건 완결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북한이 청진항에서 새 구축함을 건조하는 모습. 사진은 지난 15일 청진조선소에서 건조를 마치고 진수를 준비중인 북한 구축함의 위성사진. 사진 통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사고가 선대 지도자인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동등하거나 그들을 뛰어넘기 위해 차별화된 성과가 필요한 김정은의 조급증에서 기인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올해는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경제·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다. 그나마 성과를 내는 국방 분야조차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 성과를 다그치자 속도를 강조한 나머지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단 얘기다. 진전된 무기체계를 장착한 구축함에 집착하는 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염두에 두고 러시아 측에 파병에 대한 대가 지급을 독촉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화성지구 1만 세대 살림집 건설에 참가한 '속도전청년돌격대 제4여단의 지휘관, 대원들이 속도전 슬로건이 적힌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사고 사실을 이례적으로 즉시 공개한 배경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위성사진을 통해 새 구축함 진수 과정을 추적해왔던 만큼 어차피 은폐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외부에서 역으로 소식이 유입되는 것보다는 먼저 사실을 알리고 빠른 복원을 추진하는 게 주민들에 미치는 영향도 적다고 봤을 수 있다.
내부적으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관련 기관과 인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전원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다고 경고한 점은 사고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조직 내 긴장감을 조성하려는 전략"이라며 "국방력 강화에 대한 강한 의지와 함께 실패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전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이날 오전 순항미사일 수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하기도 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쏜 건 지난 8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수 발을 발사한 이후 14일 만으로, 군 안팎에선 진수식 실패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쇄신하는 차원에서 발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오늘 오전에 수 발을 발사했고, 한·미 정보당국이 자세한 제원을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